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승무(僧舞) / 조지훈

by 혜강(惠江) 2020. 3. 5.

 

 

 

 

 

승무(僧舞)

 

 

- 조지훈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출전 문장(1939)

 

 

<시어 풀이>

 

() : 발이 얇고 성글게 짠 비단
고깔 : 승려가 머리에 쓰는 모자, 베 조각으로 접고 맞추어 세모지게 만듦.

나빌레라 : 나비와 같구나
박사(薄紗) : 얇은 비단.
황촉(黃燭) : 꿀벌의 밀랍으로 만든 초.
외씨버선 : 외씨처럼 갸름하고 코가 예쁜 버선.
합장(合掌) : 공경이나 기원을 나타내는 불교 예식.
삼경(三更) : 한밤을 다섯 등분한 것 중 셋째(11~오전 1).

두 방울 : 여승의 눈물, 속세에 대한 미련을 드러냄과 동시에 정화의 의미를 지님.

별빛 : 여승이 승무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지향점.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산사의 달밤에 촛불을 밝히고 여승이 추는 승무(僧舞)를 통해서 인간의 세속적 번뇌를 종교적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여승의 차림새와 승무의 춤사위, 유장한 가락 등 한국적 고전미(古典美)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4음보의 율격과 우아하고 예스러운 시어와 어투를 많이 사용은 이 작품의 고전적인 분위기와 세속적 번뇌의 승화라는 주제 의식에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은유와 역설적인 표현, 감각적 이미지의 활용은 시적 대상의 운동감을 잘 나타내고 있다. , 춤의 완급에 따른 리듬의 변화도 이 시의 전개에 큰 몫을 하고 있다.

 

 모두 9연으로 된 이 시는 춤추는 동작과 순서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수미쌍관(首尾相關)의 구조는 작품의 안정감을 주면서 주제를 돋보이게 한다.

 

 1연은 여승이 춤추려는 찰나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위에서 아래로 고깔 머리 로 시선을 이동(아래)시키면서 묘사하고 있다. ‘고깔, 머리는 차림새요, ‘은 얼굴 모습에 해당한다. 예스러운 말로 쓰인 나빌레라나비일레라의 준말로 ‘ ~레라는 자신의 판단이 틀림없음을 영탄조로 사용하는 어미이다. 4연은 춤추는 무대와 배경이 되는 가을밤이 적막하고 공허하여 애상적인 분위기 임을 표현하는 것이고, 5~8은 승무의 춤 동작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5연은 날렵하면서도 사뿐히 휘도는 춤사위를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를 통해서 긴 소맷자락이 하늘을 가르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 ‘외씨버선은 춤의 아름다움을 신체의 한 곳에 집약시켜 표현한 것이다. 6~7연은 여승의 춤 동작이 정지된 상태에서 까만 눈동자가 종교적인 소망의 대상인 별빛에 집중시키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통해서 인간의 번뇌를 종교적으로 승화하려는 여승의 내면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 8연에서는 유장한 춤의 모습을 거룩한 합장에 비유함으로써 승무에서 느껴지는 경건성을 나타내고 있다. 마지막 9연은 1연과의 수미쌍관의 구조를 통해 시상을 마무리함으로써 정적미와 함께 승무의 계속되는 여운을 전해 주고 있다.

 

 특히 이 시는 예스러운 어휘와 유려하고 우아한 어휘의 사용이 큰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 ‘얇은 사’, ‘박사 고깔’, ‘황촉불’, ‘외씨버선’, ‘삼경’, ‘이 밤사’, ‘귀또리등은 고풍스런 어휘에 속하며, ‘하이얀’, ‘나빌레라’, ‘파르라니’, ‘감추오고’, ‘살포시’, ‘모두오고’, ‘아롱질 듯등은 유려하고 우아한 어휘에 속하는 것으로, 이것은 작품의 전통적인 멋과 함께 음악성, 회화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하이얀’, ‘감추오고’, ‘모두오고’, ‘감기우고등의 시어는 이런 효과를 고려한 시적 허용의 시어들로 볼 수 있다.

 

 , 이 시는 이라는 소재를 통해 현실을 초월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데, 이 시에 드러나는 이미지들도 현실과 현실의 초월이라는 대립적 관계를 나타낸다., 지상적 이미지인 춤을 추는 무대, 고깔, 눈물과 천상적 이미지인 여승이 바라보는 하늘, 나비, 별빛이 그것이다. 여기서 지상은 세속적 번뇌를, ‘천상은 번뇌의 승화로 이해할 수 있다.

 

 

작자 조지훈(趙芝薰,1920~1968)

 

 

 시인. 경북 영양 출생. 본명 동탁(東卓). 1939문장지를 통하여 <고풍 의상>, <승무>, <봉황수> 등으로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다. 고전적 풍물을 소재로 하여 우아하고 섬세하게 민족 정서를 노래하였으며, 박두진, 박목월 등과 청록집(1946)을 간행하였다. 시집으로 풀잎 단장(1952), 역사 앞에서(1959), 여운(1964) 등이 있다.

 

 

 

<해설> 남상학 (시인).

 

 

 

 

'문학관련 > - 읽고 싶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완화삼(조지훈)과 나그네(박목월)  (0) 2020.03.06
낙화(落花) / 조지훈  (0) 2020.03.05
하늘 / 박두진  (0) 2020.03.05
강(江) 2 / 박두진  (0) 2020.03.05
어서 너는 오너라 / 박두진  (0) 2020.03.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