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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완화삼(조지훈)과 나그네(박목월)

by 혜강(惠江) 2020. 3. 6.

 

 

 

 

 

A. 완화삼(琓花衫)

- 목월(木月)에게

 

 

- 조지훈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 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 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출전 상아탑(1946)

 

 

B. 나그네

-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출전 청록집(1946)

 

 

A. <완화삼>의 이해와 감상

 

 시의 제목 완화삼(琓花衫)’꽃무늬 적삼을 즐긴다는 뜻으로, ‘꽃을 즐겨 구경하는 선비를 말한다. 그 선비는 구름과 물길처럼 흘러가는 유랑의 삶을 사는 나그네이다. 부제 보아 박목월 시인을 위하여 쓴 것인데, 이 시에 대한 박목월은 화답으로 <나그네>를 썼다.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정처 없이 유랑하는 나그네가 느끼는 애상을 감정 이입과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7·5, 3음보의 전통적인 운율을 형성하고 있다. 전통적, 낭만적, 애상적 성격의 작품이다.

 

 떠도는 나그네의 애상은 1연의 하늘은 멀어서 울고 있는 산새를 통해 잘 드러나 있는데, ‘산새는 화자의 가정이 이입된 자연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산새의 울음은 하늘(이상향)에 닿을 수 없는 슬픔이며, 암울한 현실에서 느끼는 슬픔이다.

 

 2연은 정처 없는 나그네의 방랑 길을 보여준다. ‘구름물길은 유랑하는 나그네의 이미지로, 차가운 산길을 오르내리며 마을을 구름처럼 옮겨 다니는 나그네는 칠백 리의 끝없는 물길을 걸으며 구슬픈 심정을 감추지 못한다.

 

 3연은 나그네가 끝없는 여정을 걷다가 들른 강 마을에서 술 익는 냄새가 가득하고 저녁 노을빛이 눈에 어리는 가운데 꽃잎에 젖어는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그네는 잠시나마 무념무상의 경지에 빠져든다. 구름처럼 정처 없는 나그네와 아름다운 자연이 하나가 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4연에서는 그 시간은 순간일 뿐이고, 이 밤이 지나고 나면 꽃은 질 것이라는 점을 나그네도 알고 있다.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나그네는 떨어지는 꽃에서 애상감을 느낀다. 그러기에 5연에서는 나그네는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이라고 말하며 애상감에 젖어든다. 그래서 다정다감한 나그네는 달빛 아래 고요히 흘러가며간다고 노래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러한 나그네의 한과 애상감은 시각, 후각, 청각 등의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

 

 

B. <나그네>의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조지훈이 박목월에게 보낸 완화삼이란 시에 화답한 시이다. 이 시는 시골길이라는 향토적 공간을 배경으로 외로이 걸어가는 나그네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체념(諦念)과 달관(達觀)의 경지를 노래하고 있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유유자적하는 나그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나그네남도 삼백 리라는 길고 먼 외줄기 길을 혼자 걸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고단한 삶의 길을 고독하게 걸어갈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강나루, 밀밭 길, 남도, 술 익는 마을등 향토색 짙은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3음보의 민요적 율격을 사용하여 나그네를 통해 우리의 전통적인 서정인 애달픔과 외로움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시는 연의 대부분이 명사로 끝나고 있는데, 이는 간결한 느낌을 주고 집중시키는 효과를 얻기 위한 것이다.

 

 이 시의 1연은 밀밭 길을 가는 나그네를 그리고 있는데, 2연은 유유자적하는 나그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밀밭 길은 나그네의 여정이요, ‘구름에 달 가듯이는 유유자적하는 나그네의 모습인데 그 모습은 체념과 달관의 경지라고 볼 수 있다. 3연은 나그네의 외로운 여정을 길은 외줄기길로 남도 삼백 리를 가는 것으로 표현했다. ’길은 외줄기라는 표현에는 나그네의 고독한 처지에서 느껴지는 외로움이 묻어나고, ‘남도 삼백 리는 실제의 거리가 아닌, 나그네가 느끼는 고독의 깊이를 표현한 것이다.

 

 4연에 오면 나그네가 술 익는 마을을 지나간다. 그런데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의 표현은 풍류를 즐기는 나그네다운 표현이라할 수 있다. 향토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대목은 위의 에서 , 그리고 저녁놀로 이미지가 연결된다. 밀로 술을 빚고, 그 술을 마시고 붉어진 볼, 그리고 붉은 저녁노을이 긴밀하게 연결된다. 그리고, 마지막 5연은 2연과 수미상관의 구조로 연결되면서 다시한번 나느네의 체념과 달관의 정서를 강조하며 마무리된다.

 

 

C. 두 작품의 관계

 

 위 시의 작자인 조지훈과 박목월은 박두진과 함께 1946년 공동시집 청록집을 간행한 이후 청록파로 불리게 되었다. 이들은 서로 교류하면서 당시 자연 서정을 노래한 점에서 같은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조지훈이 <완화삼>을 쓴 것은 부제로 보아 박목월을 위하여 이 시를 썼고, 박목월은 그 화답으로 <나그네>를 쓴 것이다.

 

 조지훈의 <완화삼>과 박목월의 <나그네>의 공통적인 정서를 지녔다. 그 정서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순응과 체념과 한의 정서이다. 두 시에는 대응되는 시구가 등장하여 재미를 느끼게 하는데, 이것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완화삼 나그네
대응되는
시구
* 구름이 흘러가는
* 물길은 칠백 리
*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구름에 달 가듯이
* 남도 삼백 리
*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두 시인이 화답시를 쓰게 된 사연은 목월의 시집 산도화(山桃花)서문에 기록되어 있다. 이 시집의 서문(序文)을 쓴 지훈의 이야기에 따르면, 지훈은 1942년 노란 산수유꽃이 한창이던 봄날, 자기보다 네 살 연하인 목월을  경주 근처의 건천(乾川)역에서 처음 만났다. 그 이유는 목월이 경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싸느란 옥저(玉笛) 마음속에 그리던 임과 함께 볼 수 있는 감격을 지금부터 기다리겠다라며 지훈을 초청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지훈은 보름 동안 경주에 머물면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완화삼(玩花衫)>을 써서 목월에게 건넸고목월은 <완화삼>에 화답(和答)하여 <나그네>를 써 보내게 된 것이다. 이러한 특별한 인연을 알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칠백 리 낙동강 물길이 끝나는 낙동강 제방에 이 두 시인의 작품을 새겨 시비를 세워 놓았다.

 

 혹자는 두 시인을 기리켜 일제 강압기에 자연에 숨어 나그네라는 이름으로 현실 도피적인 시를 썼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박목월과 조지훈의 나그네는 정체되고 정지한 답답한 나그네가 아니다. 자연주의 청록파가 지향하는 유연함을 지닌 나그네였다. 일제 강압기에 슬픔과 한을 지녔지만, 희망과 목적성이 없어 보이면서도 목적이 있는 나그네였다. 마냥 가는 것 같아도 그들이 발길이 닿는 곳은 어느 한 곳도 눈에서 뺄 수 없는 사랑하는 내 땅이요 내 삶의 터전이다. 그곳은 빈손으로 어디엘 가도 누군가 술 한 잔을 건네며 잠재워주는 한국적인 정이 배어 있다. 그것을 노래하는 두 시인의 시는 비록 크게 소리를 지르지 않지만, 뜨겁게 사랑하는 저녁놀처럼 애잔한 슬픔을 가지고 한국 땅을 애정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므로, 향토적인 자연 서정을 읊은 두 시인은 누구보다 내 산천을 사랑하고 아끼며 노래할 줄 아는 시인이었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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