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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풀잎 단장(斷章) / 조지훈

by 혜강(惠江) 2020. 3. 7.

 

 

 

 

풀잎 단장(斷章)

 

 

-조지훈

 

 

 

무너진 성터 아래 오랜 세월을 풍설(風雪)에 깎여 온 바위가 있다.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가는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노라.
아 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조 대고 나직히 웃으며 얘기하노니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에 그윽히 피어오르는 한 떨기 영혼이여  

 

-풀잎 단장(1952)

  

 

<시구 풀이>

 

단장(斷章) : 완전한 체제를 갖추지 못한 문장의 단편. 자신의 시에 대한 겸손의 자세.
풍설(風雪) : 바람과 눈, 눈바람.
조찰히 : 조촐히 아담하고 깨끗하게.
실오리 : 실의 가락.
분신(分身: 한 주체에서 갈라져 나온 것.

 

이해와 감상

 

 이 시는 1952년 조지훈의 첫 시집 <풀잎 단장>에 수록된 7행의 자유시로, ‘풀잎을 통해 고난과 시련을 겪어내며 아름다운 존재로 태어나는 생명의 신비로움과 그에 대한 경외심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풀잎은 대자연 속에서 아주 미미한 존재이지만. 화자에는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생명의 신비로 충만한 존재다. 화자인 는 언덕에 올라 미시적 관조자로서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을 바라보며, ‘풀잎과 동화된 모습으로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노래하고 있다. 관조적이며, 사색적이며, 선비적인 삶의 자세가 드러나 있다. 대상을 의인화하여 친근감을 드러내고 있으며, 예스럽고 우아한 어조를 통하여 엄숙한 시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1행은 풀잎이 피어 있는 공간적 배경을 제시하고 있다. '무너진 성터, 풍설에 깎여온 바위'는 세상과 세월의 비정함에 눌려 마멸되어 가는 존재로 풀잎의 생명력을 돋보이게 한다. 인간사의 무상함과 자연사의 영원함을 대조적으로 제시해 주는 객관 상관물이다.

 

 2행은 풀잎을 바라보는 서정적 자아의 자세를 표현하고 있다.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언덕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가는곳을 바라보는 곳으로, 뜬구름 같은 인생을 관조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3행은 고달픈 세사에도 위안하며 살아가는 삶을 노래하는데, 여기에서 풀잎은 예사로운 풀잎이 아니라 한 줄기 바람에 산뜻하고 깨끗하게 온갖 고뇌를 씻어 버리는 풀잎으로 화자는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4행에서 화자는 풀잎과 함께 바람결에 씻기는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자연에 동화된 감정을 노래한다.
  

 56연에서는 어조가 영탄적으로 바뀌고, ''에서 '우리'로 시상이 전환되면서, 고달픈 세상에도 위안하며 사는 삶을 노래하고 있다. 화자와 풀잎은 아름다운 분신인 것이며,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사는 존재로서 함께 웃으며 얘기하는 존재로 파악한다. 이러한 태도는 고달픈 삶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작가의 인간관이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옹호의 시선으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마지막 7행은 주제가 집약된 곳으로, ‘풀잎그윽히 피어오르는 한 떨기 영혼으로 은유 되면서, 고난과 시련을 겪어내며 아름다운 존재로 태어나는 생명의 신비로움과 그에 대한 경외심(敬畏心)을 표현하고 있다.

 

 시인은 풀잎을 응시하여 인간과 자연의 일치점을 찾고 그 교감을 노래했다. 만물이 생명을 지닌 점에서, 고달픈 삶을 살며 서로 위안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일치점을 발견하는 것이다. 또한, 시인은 인간과 자연의 교감과 친화를 통해 인간이 세속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연에 동화된 존재로 승화한다고 보고 있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을 찾아내는 시인의 안목이 두드러진다.


  이처럼 조지훈은 해방 직후의 혼란 속에서 고전적인 정신의 추구를 내세우면서 절제와 균형과 조화의 시를 통해 자연을 노래하고 자기 인식에 몰두했던 시인이었다.

 

 

작자 조지훈 趙芝薰(1920~1968)

 

 

 본명 동탁(東卓). 경북 영양 출생. 엄격한 가풍 속에서 한학을 배우고 독학으로 혜화전문을 졸업하였다. 1939고풍의상(古風衣裳)》 《승무(僧舞), 1940봉황수(鳳凰愁)문장(文章)지의 추천을 받아 시단에 데뷔했다. 고전적 풍물을 소재로 하여 우아하고 섬세하게 민족 정서를 노래한 시풍으로 기대를 모았고,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1946년 시집 청록집(靑鹿集)을 간행하여 청록파라 불리게 되었다.

 

 1952년에 시집 풀잎 단장(斷章), 1956조지훈시선(趙芝薰詩選)을 간행했으나 자유당 정권 말기에는 현실에 관심을 두게 되어 민권수호 국민총연맹, 공명선거추진위원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시집 역사(歷史) 앞에서와 유명한 지조론(志操論)은 이 무렵에 쓰인 것들이다.

 

 1962년 고려대학 민족문화연구소 소장에 취임하여 한국문화사대계(韓國文化史大系)를 기획, 한국문화사서설》 《신라가요연구논고》 《한국민족운동사등의 논저를 남겼으나 그 방대한 기획을 완성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참고사항

<이하 다음카페 : ‘조지훈 문학동산에서 가져옴>

 

* 청록파 시인들의 자연관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이 공동으로 간행한 <청록집>(1946)의 시들은 대부분 일제 말기에 쓰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시들은 어떤 질적 공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시집의 발간으로 이 세 시인을 '청록파'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들이 <청록집>에서 보여 준 공통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을 소재로 한 시들을 통해 가혹한 시대를 견디려는 의지를 엿보게 해 준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전통 시가에서 흔히 조화로운 이상 세계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자연에 대한 지향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도 이들이 지닌 공통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구체적인 시적 지향이나 표현의 기교면에서는 서로 다른 양상을 보여 준다. , 조지훈의 경우는 회고적, 민속적인 제재를 통해 민족적 정서와 전통에 대한 향수 및 불교적 선미(禪味)를 그려 낸 데 비해, 박목월은 향토성이 짙은 토속적인 언어, 정형적인 율격, 간결한 이미지와 섬세한 서정성을 특징으로 하며, 박두진은 기독교적 생명 사상에 입각한 자연과의 친화를 노래하였다.

 

* 청록파 시인의 시 세계

  1939년 이후 문장을 통하여 정지용의 추천으로 시단에 나온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은 해방 후 함께 합동 시집 '청록집'을 냄으로써 '청록파' 또는 '3가 시인' '자연파' 등으로 불리게 되는데 이들의 주요 관심은 자연이었다.

 

  박목월은 흔히 향토적인 시인이라고 불린다. 그의 시의 소재는 흔히 자연이되 그는 그 자연 속에서 향토색이 짙은 용어 또는 사물을 찾아내 그것을 서로 연결함으로써 그 배면에서의 이미지의 연결을 꾀한다. 그의 시에서는 동사가 거의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시는 더욱더 정물화라는 느낌을 준다. 사람의 숨결이 스며 있지 않음도 볼 수 있다.


  조지훈은 문화적 보수주의에 바탕을 둔 대표적인 시인으로 일컬어질 수 있다. 그가 시에서 그리고자 하는 것은 잃어버린 옛 질서요 옛 풍물이다. 그 옛 질서 옛 풍물에 대한 그리움이 때로 그를 우국적으로 되게도 하고 지사다운 풍모를 지니게도 만든. 또는 그의 반근대화주의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하여 반항하는 꼴을 취하게도 만든다.

 

  박두진은 이 둘에 비하여 더욱더 관념적이다. 그의 시는 언젠가 올 메시아에 대한 찬미로 차 있다고 볼 수 있다. 박두진의 자연은 메시아의 도래에 의해 완성될 수 있을 뿐이며 이점에 있어 그의 자연은 조지훈, 박목월의 자연을 노래한 지난날의 자연인 것과 전혀 다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이상주의자요, 뒤에 그가 사회적 불의에 항거해서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시를 쓰게 된 사실도 이 문맥에서 이해된다.

 

* 청록파의 작품 경향과 문학사적 의의

 

1) 시풍
조지훈 : 지사의 기풍을 지니고 고전적인 소재를 취재하여 회고적인 시정에 젖어 들었다. 동양적인 선관(禪觀)을 보여 줌
박두진 : 자연에 대한 신선한 생명력과 기독교적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자연과 친화한 시를 보여 줌. 기독교적인 자연관을 지님
박목월 : 민요적 가락에 짙은 향토색을 가미하여 자연에 대한 관조를 보여 줌. 전통적인 정관(情觀)을 보여 줌.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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