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태양(太陽)
- 조지훈
꽃 사이 타오르는 햇살을 향하여
고요히 돌아가는 해바라기처럼
높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
그 속에 맑은 넋을 살게 하라.
가시밭길을 넘어 그윽히 웃는 한 송이 꽃은
눈물의 이슬을 받아 핀다 하노니
깊고 거룩한 세상을 우러르기에
삼가 육신(肉身)의 괴로움도 달게 받으라.
괴로움에 짐짓 웃을 양이면
슬픔도 오히려 아름다운 것이
고난(苦難)을 사랑하는 이에게만이
마음 나라의 원광(圓光)은 떠오르노라.
푸른 하늘로 푸른 하늘로
항시 날아오르는 노고지리같이
맑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
그 속에 높은 넋을 살게 하라.
- 《역사 앞에서》(1959)
<시어 풀이>
원광(圓光) : 둥글게 빛나는 빛. 여기서는 ‘기쁨과 영광’을 뜻함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푸르고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며 현실적 고통을 이겨 내고, 깨끗하게 정화된 넋으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화자의 의지를 노래한 작품이다. 의지적, 이상적, 관념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시의 제목인 ‘마음의 태양’은 고난을 극복한 후에 이를 수 있는 정신적 성숙 또는 화자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정신적 자세’로서 화자는 고난과 시련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괴로움을 참고 견디어 이상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인다.
전 4연으로 된 이 시는 1연과 4연의 이상세계(천상)와 2연과 3연의 현 실세계(지상)를 대비시키고, 수미상관의 구조를 통해 주재를 강조하고 있으며, ‘~하라’, ‘~받으라’와 같은 명령형을 사용하여 단호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연은 이상세계에 대한 일관된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푸른 하늘을 향하는 ‘해바라기’는 ‘햇살’에 대한 일편단심으로 살아가는 꽃인데, 이상세계를 지향한다. 해바라기처럼 ‘높고 아름다운 하늘 받들어/ 그 속에 맑은 넋을 살게 하라’는 이상세계를 추구하려는 화자의 의지가 담겨 있다.
2연은 고난 극복의 의지와 그 결과로서의 기쁨과 영광을 노래한다. ‘가시밭길’과 ‘눈물의 이슬‘은 고통과 고난을 의미하는데, 꽃은 이런 것을 자양분으로 하여 피는 것을 알기에 ’깊고 거룩한 세상’을 우러르며 ’육신의 괴로움’을 달게 받으라고 한다. ‘깊고 거룩한 세상’은 고난과 영광, 슬픔과 기쁨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이다.
3연은 주제 의식이 가장 잘 드러난 연으로, 기쁨과 영광을 얻기 위해선 ’괴로움’과 ’슬픔’을 수용해야 함을 표현하고 있다. 역설적 발상을 통해 화자의 삶의 자세를 표현한 것이다. 즉, 시련과 고난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괴로움을 견디며 마음속에 깨끗한 넋을 소유한 자만이 ’마음 나라의 원광‘, 즉 기쁨과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1연과 수미상관의 구조로 된 4연은 이상에 대한 영원한 의지를 재차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노고지리’는 1연의 ‘해바라기’와 같이 상승적 이미지의 소재로, 화자에게 높은 정신세계를 지향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는 대상이다. 또, ‘하늘’은 ‘햇살(1연), 거룩한 세상(2연), 원광(3연)’과 같이 이상세계를 상징한다. 그리고 ‘그 속에 높은 넋을 살게 하라’의 ‘높은 넋’은 정화된 의지를 가리킨다. ‘살게 하라’는 명령형 어미는 자신의 다짐인 동시에 강한 요청이다.
즉, <마음의 태양>은 높고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며 괴로움과 고난을 이겨 내고 높은 넋으로 살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의지가 담겨 있는 시이다. 즉, 고통과 시련을 피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성숙한 삶에 도달할 수 있음을 형상화하고 있다. 지사적 풍모를 지닌 시인은 광복 후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그간 겪었던 고난과 시련을 딛고 일어나 보다 높은 이상적 세계를 지향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이 시에 담은 것이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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