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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초토(焦土)의 시 8 / 구상

by 혜강(惠江) 2020. 3. 7.

 

 

 

 

초토(焦土)의 시 8   

- 적군 묘지 앞에서

 

   구상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면 가로막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람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 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 놓아 버린다.

 

                       - 초토의 시(1956)

 

 

<시어 풀이>

 

초토(焦土) :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 폐허가 된 전쟁터

: 흙을 붙여서 뿌리째 떠낸 잔디.
무주공산(無主空山) : 인가와 인기척이 전혀 없는 쓸쓸한 산.
은원(恩怨) : 은혜와 원한을 아울러 이르는 말.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시인이 6·25 전쟁 때의 종군 체험을 바탕으로 쓴 연작시 초토의 시’ 15편 중 여덟 번째 작품으로, ‘적군 묘지앞에서 적군 병사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동족상잔의 비극에 대한 아픔과 통일을 염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화자는 1연에서 적군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2연에서 적군의 무덤이 미움과 사랑을 초월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적군의 시신을 거두어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고 고이 떼를 입혀주는 행위는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상황에서도 한 민족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사랑과 연민의 감정을 훼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 이념적 증오를 초월한 화해와 포용력이요, 인도주의에 바탕을 둔 인간애라고 보아도 좋다.

 

 그리고 3연에서 시적 화자는 적군 병사의 무덤 앞에서 느끼는 죽음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 사랑보다도더 너그러운 것이로다.’라는 표현 속에는 애증을 초월한 이념 대립의 허망함과 생명의 존엄성이 짙게 배어 있다.


  4연에서는 시상의 전환되면서 국토분단의 비극적 통한을 노래한다.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면 가로 막히고라는 표현은 죽은 넋조차 돌아갈 수 없는 분단의 비극을 의미하는 것이며, 적군의 무덤을 상징하는 무주공산에는 적막만이 흐른다며 가슴 아파한다.

 

 5연에 와서 화자는 분단으로 인한 우리 민족의 아픔을 내면화하면서 갈라진 민족의 진정한 화해와 통일에 대한 바람(염원)을 드러내고 있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람 속에 깃들어 있도다시인은 적군의 무덤을 바라보면서 민족의 고통을 절감하며, 적군들의 풀지 못한 원한을 그들만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하는 일체감을 보여 준다.


 마지막 6~7연에서는 민족의 통일에 대한 바람과 분단 현실의 아픔을 나타내고 있다. 가로막힌 휴전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구름과 남과 북으로 나뉘어 대치하고 있는 상황(‘포성’)을 대조적으로 제시하여 분단 현실의 비극적 모습을 부각하고 있다. 그리고 은원이란 단어로써 동포로서의 사랑과 적으로서의 원한이 교차하는 감정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화자는 전쟁의 원한과 상처를 교훈 삼아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깨달음, 그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보통 전쟁시라면, 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느낀 분노나 적개심을 주로 표현하기 마련인데, 이 시는 민족애와 기독교적 윤리 의식에 바탕을 둔 휴머니즘의 토대 위에서 분단 현실에 대한 통한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그려 내고 있다는 점이 다른 시와 크게 다르다. 즉 이 시의 화자는 전쟁이 남긴 적군 병사의 무덤을 보면서, 전쟁과 분단 현실에서 오는 우리 민족 전체의 아픔을 자기화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랑과 화해를 말하고 있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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