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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초토(焦土)의 시 1 / 구상

by 혜강(惠江) 2020. 3. 7.

 

 

<사진 : 한국전쟁 후 생겨난 청계천 판잣집>

 

 

초토(焦土)의 시 1

 

 

- 구 상

 

 

하꼬방 유리 딱지에 애새끼들

얼굴이 불타는 해바라기마냥 걸려 있다.


내려 쪼이던 햇발이 눈부시어 돌아선다.

나도 돌아선다.

울상이 된 그림자 나의 뒤를 따른다.

 

어느 접어든 골목에서 걸음을 멈춰라.

잿더미가 소복한 울타리에

개나리가 망울졌다.


저기 언덕을 내려 달리는

체니의 미소엔 앞니가 빠져

죄 하나도 없다.


나는 술 취한 듯 흥거러워진다.

그림자 웃으며 앞장을 선다.

 

                            - 출전 초토의 시(1956)

 

 

<시어 풀이>

 

초토(焦土) :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 여기서는 6·25 전쟁 이후의 비극적인 상황

하꼬방 : 일본어 하꼬’(상자)()’의 합성어, 상자, 궤짝 등을 잇대어 지은 판잣집

체니 : 처녀 (함경도 방언).

흥거러워진다 : 마음에 여유가 생겨 흥겨워진다.

 

이해와 감상

 

 초토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이란 뜻으로 전쟁으로 참화를 겪은 우리나라를 의미한다. 이 시는 6·25 전쟁이 남긴 참혹한 삶의 현장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던 시적 화자가, 비극적 현실을 피하지 않고 직시함으로써 오히려 민족적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화자인 는 피란민 촌을 돌아보며 6·25 전쟁 직후의 아물지 않은 민족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면서 폐허가 된 조국의 비극적 현실을 따뜻한 인간애와 굳센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1연을 보면, 전쟁의 참상 속에서 본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다 쓰러져가는 '하꼬방'과 조각조각 깨어져 덕지덕지 이어 놓은 '유리 딱지'는 전쟁으로 인한 피폐한 삶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그 하꼬방에 붙어 있는 애새끼들의 모습은 불쌍하며 참혹하다.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해바라기처럼 걸려 있지만, 그들의 모습은 아무런 희망도 없어 비극적일 뿐이다.

 

 2연은 비극적인 현실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돌아서는 화자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내리쪼이던 햇발이 눈부시어 돌아선다라는 것은 햇살도 애새끼들의 천진한 모습 때문에 부끄러워 계속 비출 수 없다는 뜻이며, ’나도 돌아선다는 전쟁의 책임을 느끼는 화자인 도 돌아선다. , ’그림자는 시적 화자의 분신으로서 화자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데, 그림자가 뒤를 따른다는 것은 전쟁으로 인한 참담한 현실에서 느끼는 자괴감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3연은 화자의 인식이 전환되는 깨달음의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절망에 젖어 걸어가던 화자가 어는 골목에서 발을 멈췄다. 이제는 절망의 길을 가지 않겠다며 멈춰선 화자의 눈에 망울진 개나리가 보였다. 전쟁의 참상을 뜻하는 잿더미에서 희망의 개나리를 발견한 것이다.

 

 이어지는 4연에서는 순수한 체니의 아름답고 희망찬 미소를 그려냈다. 앞니 빠진 소녀의 싱그러운 웃음 속에서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체니의 미소는 앞 연의 개나리와 더불어 비극적 현실의 극복에 대한 기대와 희망에 차게 된다.

 

 마지막 5연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희망을 발견한 자는 기쁨에 겨워 술 취한 사람처럼 흥겨워하는데, 그 기쁨은 그림자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2연에서 울상을 지은 채 화자의 뒤를 따르던 그림자가 6연에 와서는 환하게 웃으며 앞장서고 있다.


  이 시는 시인이 6·25 전쟁 때 종군기자로 활동하면서 겪은 전쟁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15편의 연작시 중 첫 번째 시다. 나머지 14편의 시를 이끄는 1편에서 화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시 세계가 좌절이나 절망이 아니라,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그 속에서 희망을 바라보고자 했다. 조국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역사의식이다.

 



작자 구상(具常, 1919~2004)

 

  시인. 서울 출생. 본명 상준(相俊). 1946년 시집 응향(凝香)사건으로 반동 시인으로 몰려 월남했으며, 6·25 종군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시집으로 구상(1952), 초토의 시(1956) 등이 있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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