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女僧)
- 백 석
여승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山)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사슴》(1936)
<시어 풀이>
가지취 : 취나물(산나물)의 일종.
금점판 : 금광의 일터.
섶벌 : 재래종의 꿀벌.
마당귀 : 마당의 한 귀퉁이.
머리오리 : 머리카락의 가늘고 긴 가닥.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어려운 현실을 살아갔던 한 여인이 여승이 되기까지의 비극적인 삶을 서사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민족의 비극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역순행적 구성 방식으로 애상적인 내용을 회상하며 서사적으로 담담하게 표현했다. 시상의 압축과 절제가 돋보인다.
모두 4연으로 된 이 시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구성이 아닌 그 순서가 뒤바뀐 역순행적 구성 방식으로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1연은 현재의 상황으로 시적 화자가 여승이 된 여인과 재회하는 장면이다. 2~4연은 과거의 상황이다. 먼저 2연은 시적 화자와 여인이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이고, 3연은 그 이후의 여인의 비극적인 삶의 과정이 나타나 있고, 4연은 여승이 되기 위해 삭발하던 날의 정경을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 서사적 사건을 이 시는 4연 12행의 압축적인 구성으로 밀도 있게 보여 주고 있다.
1연은 현재 시점에서 출가한 여인과의 재회를 보여준다. 합장하는 여인에게서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는 것은 여승의 이미지를 후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쓸쓸해 보이는 얼굴은 2, 4연에서 보여 주는 옛날의 삶의 모습처럼 늙어 보였고, 그래서 화자는 ‘불경처럼 서러웠다’는 말로 속세를 떠나 불교에 귀의할 수밖에 없었던 삶의 고통과 서러움을 공감하고 연민의 정을 느낀다.
2연부터는 과거로 돌아간다. 2연은 처음 만났을 때 본 여인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 때 여인은 평안도의 어느 깊은 산속 금광의 일터에서 옥수수를 팔고 있었고, 나이 어린 딸을 때리며 서러움과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우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었음을 회상한다. ‘그을 밤같이 차게 울었다’는 청각을 촉각으로 표현한 공감각적 표현이다.
여인의 비극적인 삶은 3연에 이어져 여인의 슬픈 가족사(家族史)를 표현하는 것으로 확대된다. 남편은 10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고, 행상을 하던 여인은 아이마저 죽게 되어 가족이 사라졌다고 표현함으로써 자신이 정착해 살 수 있는 곳을 잃어버린 상태가 된다. 여인의 삶은 식민지 현실에 희생당한 우리 민족의 삶을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도라지꽃’은 어린 딸의 비극인 죽음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4연은 과거에 만난 여인이 출가하는 장면을 상상하여 그려냄으로써 여인의 비극적 삶을 극대화하여 표현하였다. 또 한 여인의 서러움을 ‘산꿩’이라는 자연물에 감정 이입(移入)하고 삭발 과정에서 떨어지는 ‘머리오리’를 ‘눈물방울’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여인의 한(恨)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였다.
이 시는 비극적인 삶을 살다가 결국 출가한 여인과 재회함으로써 화자의 눈으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통하여 일제 강점기 속에서 당시 여인이 겪은 비애감과 한 많은 삶의 모습을 보여 주는 동시에 가족들과 헤어지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우리 민족의 현실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참고로 나태주 시인이 <여승>에 대하여 쓴 글을 여기 옮겨본다.
<여승>은 백석 시인의 대표작이나 다름없는 시이다. 짐짓 남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은 듯,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마음을 기울여 내부를 들여다보면 매우 마음 아픈 인간의 숨결이 거기 진하게 흐느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시는 그 구성이 소설적이다. 그래서 시점이 현재에서 과거로 역행하도록 되어 있다. 우선 첫 행이 현재의 시점이다. 시인 앞에 합장으로 인사하는 한 여승. 그녀한테서 ‘가지취의 냄새’ 가 났다는 것이고. 얼굴이 또 ‘옛날같이’ 늙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불경처럼’ 서러웠다는 얘기다. 직유법인데 직유의 대상이 너무나 의외성을 가지고 있어 두고두고 놀라움과 신선감을 준다.
그 다음부터는 그 여승의 과거 이야기가 나오면서 시인과의 인연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시인이 처음 그 여인을 만난 것은 ‘평안도 어느 금덤판(금광 일을 하는 일터)’ . 거기서 시인은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는 것이다. 그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때리며) ’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도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는 표현이 목구멍에 가시가 되어 아프게 걸린다.
세 번째 연은 더욱 깊은 내력을 펼쳐 놓는다. 여인의 지아비(남편)는 ‘섶벌같이 나아’가 ‘십년’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고, 여인의 ‘어린 딸’ 은 또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는 사연이 나온다. 다시 말하자면 남편은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딸아이마저 죽어서 여인은 혼자 몸이 되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여인은 여승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인데 마지막 연의 ‘섧게’ 우는 ‘산꿩’은 여인의 울음을 대신해서 우는 객관적 상관물이고 ‘산절의 마당귀’에 ‘떨어진’ ‘여인의 머리오리’는 역시 여인의 ‘눈물방울’의 대역이다. (나태주 시인)
* e-금강뉴스(2011.11. 23) ‘여승(백석)’에서 옮겨옴
▲작자 백석(白石, 1912~1995)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평안북도 정주 출생. 1929년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다. 그해 조선일보 후원 장학생으로 일본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청산학원)] 영문과에 유학했다. 1934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잡지 《여성》 편집을 맡았으며 시 <정주성(定州城)> 등을 발표했다.
1936년 33편의 시가 실린 시집 《사슴》을 자비로 100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면서 순수 서정시인으로 선풍을 불러일으켰다.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 등으로 재직하다 만주로 가 방랑 생활을 했으며 광복 후 고향 정주로 돌아갔다가 북한 체제에 남게 됐다. 북한에서는 번역과 동화시 창작에 주력하다 숙청당한 뒤 1963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나중에 그가 1995년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향의식(失鄕意識)을 한국 고유의 가락에 실어 노래한 향토색 짙은 서정시로 1930년대 한국문단에서 활동했으며, 유일한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다. 1980년대 들어와 백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의 작품을 모은 《백석시전집(1987)》이 출간되었다.
주요 작품으로 <여승>, <여우난곬족>, <모닥불>.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등이 있다. 그는 주로 서민들의 삶을 토속적인 언어로 현실감 있게 그려 내면서 우리 민족 공동체의 정서를 드러내었다. 또한 여행 중에 접한 풍물이나 체험을 표현한 기행 시와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창작하였다.
백석 시인이 즐겨 사용한 것은 반복과 나열과 부연으로 어떤 사실이나 정황 등을 줄줄이 이어 나가는 ‘엮음’의 구문이다. 사설시조, 휘모리장단 등의 전통 시가의 주된 표현 형태인 이 엮음의 구문은, 말이 연속적으로 엮어지기 때문에 흥미와 속도감을 유발하며, 개별 장면이나 상황의 정서를 강화, 확대시켜 장면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시도는 우리말 구문의 개척이라는 백석 시의 문학적 성취를 가리키는 것이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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