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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여우난곬족(族) / 백석

by 혜강(惠江) 2020. 2. 29.

 

 

 

 

 

여우난곬족()

 

 

- 백석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 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모 고모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모 고모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동이

   육십 리라고 해서 파랗게 보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던 말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모 고모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동이 작은홍동이

   배나무 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려 가기를 좋아하는 삼촌 삼촌엄매 사촌누이 사촌동생들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기떡 콩가루찰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대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 옆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릇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윗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대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랫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서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 틈으로 장지문 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 정본 백석시집(문학동네, 2007)

 

 

 

<시어 및 시구 풀이>

 

여우난곬족 : 여우가 난 골 부근에 사는 일가친척들

진할머니 진할아버지 : 아버지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별 자국 : 천연두 흉터 자국

포족족하니 : 빛깔이 고르지 않고 파르스름한 기운이 도는(화가 나서 토라지는 모양을 흉내낸 말)

매감탕 : 엿을 고거나 메주를 쑨 솥을 씻은 진한 갈색물

토방돌 : 집채의 낙수 고랑 안쪽으로 돌려가며 놓은 돌. 섬돌

오리치 : 평북지방에서 오리 사냥에 쓰이는 동그란 갈고리 모양의 사냥 용구

반디젓 : 밴댕이젓

송구떡 : 소나무 어린 가지의 속껍질을 넣어 만든 떡

안간 : 안방

끼때 : 끼니때

저녁술 : 저녁밥 먹는 숟가락

숨굴막질 : 숨바꼭질

아릇간 : 아랫방

조아질, 쌈방이, 바리깨돌림, 호박떼기, 제비손이구손이 : 아이들 놀이의 여러 종류

화디 : 등잔대

사기방등 : 흙으로 만든, 방에서 켜는 사기 등잔

홍계닭 : 새벽닭

텅납새 : 처마의 안쪽 지붕

무이징게국 : 징거미 민물새우에 무를 썰어 넣고 끓인 국.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시인의 초기 대표작으로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인 명절날의 정겨운 풍경을 관찰자적 시선과 사실적인 묘사로 사라져가는 농촌 공동체의 풍요로운 삶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작품이다.

 

 시의 제목인 여우난곬족에서 여우난골은 여우가 자주 출몰하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그 골짜기 부근에 사는 일가친척을 가리킨다. 이 친척들이 명절에 함께 모여 음식을 먹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아이들은 재미있게 민속놀이를 하는 등 공동체적 유대감을 드러내는 것을 통하여 화자는 공동체적 삶 속에서의 화목한 인간애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낸다.

 

 먼저, 이 시의 표현상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로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이동에 따라 시상이 전개되고 있으며, 둘째로 판소리를 연상하게 하는 반복, 나열, 부연으로 이루어진 엮음의 표현 방식을 통해 이야기 속의 개별 장면들의 의미와 정서가 점차 강화되고 확장되고 있으며, 셋째로 토속적인 소재와 평안도 방언의 사용으로 고향의 명절 분위기를 생생하게 잘 그려내고 있으며, 넷째는 화자를 어린 시절의 로 설정하여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명절날의 흥겨운 분위기를 생생하게 회상하고 있다.

 

 이 시는 화자인 아린 가 명절날 아침 '엄매 아배를 따라' 큰집으로 나서면서부터 시작된다. (1). 이어 2연에서는 큰집에 모인 일가친척들의 외모와 삶의 모습을 간결하고 인상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 즉 곰보인 신리 고모, 홀아비의 후처가 된 토산 고모, 과부가 된 큰골 고모 주정뱅이 삼촌 등 시적 화자가 그리워하는 고향 가족들이다. 그리고 이녀’, ‘승녀’, ‘승동이’, ‘홍녀’, ‘홍동이등 호칭은 향토적인 느낌을 주고, 아울러 끈끈한 공동체적 의식을 보여준다. 천연두 흉터 자국을 별 자국으로, 자기표현이 자유롭지 못하고 어눌한 모습을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으로, 우직하니 일만 하는 성격을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것으로 표현한 것은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인 묘사라 할 수 있다.

 

 3연은 저녁 큰집 안방의 정경과 안방에 장만해 놓은 넉넉한 음식들을, 4연에서는 큰집에 모인 친척들이 밤부터 새벽까지 풍성하고 흥겨운 민속놀이를 하는 등 떠들썩한 분위기를 즐기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친척들의 풍요로운 인정미와 고향의 정취가 훈훈하게 느껴진다.

 

 혈족들의 공동체적 삶에서 우러나는 고향의 정취와 풍요로움을 읊은 이 시는 1930년대 시의 고향의 식과 일치한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의 우리 시에는 고향을 제재로 다룬 작품이 많다.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민족이나 국가에 대한 그리움을 고향으로 드러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고향을 노래한 시들은 대체로 고향을 '상실의 공간', 혹은 '가족 공동체의 모습을 지닌 그리움의 공간'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의 문학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고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백석의 시에서 그려지는 고향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진 않지만 안식과 평화로움의 정신적 가치가 있는 일종의 신화적 공간이며 공동체적 유대가 남아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 고향은 현실적 조건 하에서는 이미 훼손되어 남아 있지 않는 과거의 공간이다. 그의 시가 과거지향적인 것은 이러한 이유이다. 고향의 풍물, 세시 풍속, 생활 도구, 전통예절을 잡다하게 나열하면서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것은 훼손된 고향의 회복을 원하는 간절한 의지이며, 이것은 나아가 민족 공동체의 회복을 소망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는 대표작으로는 바로 <여우난 곬족>이다.

 

  

정지용, 백석, 이용악, 오장환, 윤동주 등이 이에 해당하는 시인들이다. 정지용이나 백석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고향 마을을 정겨운 모습으로 형상화하면서 향토적인 서정성을 노래하고 있다. 정지용의 '향수'나 백석의 '여우난 곬족'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에 이용악과 오장환의 경우에는 '상실 의식'이 주조를 이루는데, 삶이 터전을 잃어버리고 유랑하는 비애감이 짙게 깔려 있다. 오장환의 '고향 앞에서'나 이용악의 '그리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윤동주의 경우는 이러한 상실감을 내면화하여 자아의 존재성과 연결 지어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1930년대 우리 시에 나타난 고향의 노래는 당대 식민지라는 시대 상황과 밀접히 관련되어 나타난 작품들로 이해할 수 있다.

 

 

▲작자 백석(白石, 1912~1995)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평안북도 정주 출생. 1929년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다. 그해 조선일보 후원 장학생으로 일본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청산학원)] 영문과에 유학했다. 1934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잡지 《여성》 편집을 맡았으며 시 <정주성(定州城)> 등을 발표했다.

 

 1936년 33편의 시가 실린 시집 《사슴》을 자비로 100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면서 순수 서정시인으로 선풍을 불러일으켰다.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 등으로 재직하다 만주로 가 방랑 생활을 했으며 광복 후 고향 정주로 돌아갔다가 북한 체제에 남게 됐다. 북한에서는 번역과 동화시 창작에 주력하다 숙청당한 뒤 1963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나중에 그가 1995년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향의식(失鄕意識)을 한국 고유의 가락에 실어 노래한 향토색 짙은 서정시로 1930년대 한국문단에서 활동했으며, 유일한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다. 1980년대 들어와 백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의 작품을 모은 《백석시전집(1987)》이 출간되었다.

 

 주요 작품으로 <여승>, <여우난곬족>, <모닥불>.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등이 있다. 그는 주로 서민들의 삶을 토속적인 언어로 현실감 있게 그려 내면서 우리 민족 공동체의 정서를 드러내었다. 또한 여행 중에 접한 풍물이나 체험을 표현한 기행 시와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창작하였다.

 

 백석 시인이 즐겨 사용한 것은 반복과 나열과 부연으로 어떤 사실이나 정황 등을 줄줄이 이어 나가는 ‘엮음’의 구문이다. 사설시조, 휘모리장단 등의 전통 시가의 주된 표현 형태인 이 엮음의 구문은, 말이 연속적으로 엮어지기 때문에 흥미와 속도감을 유발하며, 개별 장면이나 상황의 정서를 강화, 확대시켜 장면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시도는 우리말 구문의 개척이라는 백석 시의 문학적 성취를 가리키는 것이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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