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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거리 / 박남수

by 혜강(惠江) 2020. 2. 28.

 

 



 

거리

 

 

     - 박남수  

 

 

   

람프불에 부우염한 대합실에는 

젊은 여인과 늙은이의 그림자가 커다랗게 흔들렸다

 

-네가 가문 내가 어드케 눈을 감으란 말인가

 

경편열차(輕便列車)의 기적이 마을을 흔들 때

여인은 차창(車窓)에 눈물을 글성글성하였다

 

-네가 가문 누굴 믿군 난 살란

 

차가 굴러 나가도 

늙은이는 사설을 지껄였다

 

-데놈의 기차가 내 며느리를 끌구 갔쉬다가레.

 

 

                                    - 문장(1939) 수록

 

 

<시어 풀이>

 

부우염한 : 실속 없이 겉만 아름다운, ‘부염한의 늘인 말

경편열차(輕便列車) : 철길 너비가 좁고 규모가 간단한 경편 철도에 이용하는 열차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일제 강점기인 1939년에 발표된 시로, 어느 기차 간이역에서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이별하는 상황을 담고 있다.

 

 먼저, 제목의 '거리'는 어떤 거리인가? 여기서의 거리는 한자어 거리(距離)’를 가리키는 말로 등장하는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며, 동시에 첫 번째에서 세 번째에 걸치는 '사설' 사이의 거리를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차역 대합실은 본래 각양각색의 사연들로 눈물짓는 사람들,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떠나보내기 싫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 대합실에 떠나야 하는 젊은 여인늙은이가 이별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런데 화자는 이별이라는 안타까운 상황을 처절하고 사무치게 표현한 것이 아니라, 아주 담담하고 객관적인 어조로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담담한 어조는 서술자가 상황 밖에서 상황을 관찰하고 있는, 즉 등장인물들과 별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다만, 이별의 비통한 심정은 2, 4, 6연에서 노인의 넋두리를 차례대로 직접 인용함으로서  젊은 여인과의 이별로 인한 노인의 비통한 심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 장면에서 젊은 여인늙은이는 어떤 사이인지, 또 왜 떠나야 하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는다마지막 연에서 젊은 여인은 며느리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만 ’‘늙은이는 시아버지인지, 시어머니인지 분명치가 않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여인의 반응 태도나 노인의 말투로 볼 때 시아버지로 추측될 뿐이다. 그리고 이별해야 하는 이유도 분명치 않다. 그래서 이 극적 장면은 전적으로 읽는 이의 몫으로 남는다. 아무튼 두 사람 사이의 이별은 비통할 수밖에 없다.

 

 6연으로된 이 시는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1,3,5연은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장면의 표현이며, 2,4,6연은 노인의 대사로 교차하여 구성한 점이 특징이다. 객관적인 장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상이 전개되고 있으며, 노인의 말투에는 영락없는 투박한 서도 사투리가 돋보인다.         

 

 먼저, 1연은 램프에 전등불이 켜진 시간, 대합실에 젊은 여인늙은이두 사람이 서 있다. ’부우염한 대합실은 이별의 장소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나타내며 그림자가 커다랗게 흔들렸다는 이별의 슬픔으로 인해 눈물을 가누지 못해 몸이 흔들리는 모습을 표현인 것이다. 이 상황에서 노인은 네가 가면 내가 어떻게 눈을 감으란 말이냐?”고 외친다. 며느리와 이별하기 싫은 노인의 비통한 울부짖음이다.

 

 3연은 배경이 대합실에서 열차가 정차해 있는 플랫홈으로 이동한다. 협궤열차에 탄 여인이 이별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눈물을 글썽거거린다. 노인을 두고 떠나야 하는 여인의 안타까운 심정이 드러나 있다. 그래서 노인의 슬픔은 4연에서 네가 가면 누구를 믿고 살라는 말이냐?”며 탄식과 원망으로 바뀐다. ’살란?‘은 흐느낌과 울먹임에 뒷말이 생략된 것으로 볼 수 있다.

 

 5연의 장면은 여인이 탄 열차는 떠나가고 텅빈 공간이다. 노인은 여인이 떠난 텅 빈 공간에 서서 저놈의 기차가 내 며느리를 끌고 갔다며 며느리와의 이별로 인한 슬픔과 비통한 심정을 그 누구에겐가 절규하듯 외치고 있다.    

 

 이 시에서도 박남수 특유의 이미지 표현을 접할 수 있다. 박남수는 이미지의 시인으로 불릴 만큼 시 속에서 이미지 표현에 뛰어난데, 결코 이미지 표현이 과하지 않다는 데서 그의 시적 재능이 드러난다. 이별의 상황이라는 안타까운 정서를 표현하되, 그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그림자의 흔들림, 마을을 흔드는 기차의 기적 소리 등 상황 속의 이미지를 통하여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절제 의미가 안타까움의 정서를 더욱 효과적으로 배가한다.

 

 

 

작자( 朴南秀, 1918~1994)

 

 

 평양 출생평양의 숭인상업학교일본 쥬오대학(中央大學졸업문화예술(1954), 사상계》 편집위원한양대학교 문리대 강사 등 역임했다.

 

 1939년 문장(文章)에 정지용(鄭芝溶)의 추천으로 <심야(深夜)> <마을> <주막(酒幕)> <초롱불> <밤길> <거리등 6편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이후 그가 사망할 때까지 초롱불(1940), 갈매기 소묘(素描)(1958) ()의 쓰레기(1964) 새의 암장(暗葬)(1970) 사슴의 관()(1981) 서쪽 그 실은 동쪽(1992) 그리고 그 이후(1993) 소로(小路)(1994) 등 8권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훌륭한 표현만이 예술가의 특권이며사상을 사상으로만 제공한 것은 예술작품이 아니다.”라고 한 그 자신의 말과도 같이박남수는 실지 시작에서도 청각이나 시각을 통한 선명한 이미지와 시어 구사로서 표현을 가다듬고 있다. 흔히 그를 일컬어 의 시인이라 하고 있듯이그는 선명한 이미지와 그것을 통한 순수성의 지향이 시적 특색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박남수의 시 세계는 과 어둠’, ‘과 죽음이라는 대립적 심상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적 지향은 의 상징적 이미지로 형상화되고 있다그는 말년에 미국에 이민하여 낯선 땅에 살면서도 민족시를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획득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시인으로 이미지의 조형성(造形性)과 현대적 지성(知性)을 바탕으로 한 주지적 서정시를 썼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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