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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 / 백석

by 혜강(惠江) 2020. 2. 29.

 

<사진 : 갈매나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

 

 

 

 - 백석(白石)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학풍(1948)  

 

 

<시어 및 시구 풀이>

 

*삿 : 삿자리.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쥔을 붙이었다 : 주인집에 세들었다. 세를 얻어 살다.
*누긋한 : 메마르지 않고 좀 눅눅한.
*딜옹배기 : 질옹배기. 둥글넓적하고 아가리가 벌어진 작은 질그릇.
*북덕불 : 짚이나 풀, 겨 따위가 뒤섞여 엉클어진 뭉텅이에 피운 불.
*쌔김질 : ‘새김질의 센말
*나줏손 : 저녁 무렵.
*바우 섶 : 바위 옆.

*하이야니 : 맑고 깨끗한,

*갈매나무 : 갈매나뭇과의 낙엽 활엽 관목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집도 없이, 아내뿐만 아니라 모든 일가친척과 떨어진 채 홀로 살아가는 화자의 고독과 외로움을 나타낸 작품으로, 백석의 대표 시 가운데 하나이다. 백석의 후기 시를 대표하며 자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준다. 이 시는 구성과 형식 면에서 안정되고 문학성이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시의 제목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편지 봉투에 적는 발신인의 주소를 적는 형식이다. 여기서 방()은 편지에서 가구주나 집주인의 이름 아래 붙여 그 집에 거처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시의 제목은 남신의주(신의주 남쪽) 유동에 사는 박시봉 집에서화자가 자신의 근황을 편지형식으로 알리고 있는 것인데, 서간체 형식으로 이루어진 시의 내용과 어울린다. 이러한 편지형식의 시는 시적 화자의 내면 의식과 심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장점이 있다.

 

 시의 구성은 8행까지의 처음, 923행까지의 중간, 2432행까지의 끝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시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8행까지는 화자가 가족과 헤어져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어느 목수네 집의 한 방을 얻어 거처하게 된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 있다. 9행부터 화자는 자신의 삶을 성찰하여 상실감과 회한 등으로 괴로워하고죽고 싶을 정도의 극한적인 감정을 토로한다.

 

 '그러나'로 시작하는 20행부터 화자의 정서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처럼 화자의 태도가 달라지는 계기는 화자가 자기 삶의 과정이 운명에 의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난 이후이다. 그래서 화자는 자신의 삶에서 운명적인 요소를 이해하고 이를 수용하며, ‘더 크고 높은 것의 존재를 깨닫고 갈매나무처럼 고통과 시련에도 의연하고 꿋꿋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이 시에서 등장하는 평안도 방언의 구사는 백석 시 전체에 공통되는 특징 중의 하나로 토속적인 정감을 주고 작품에 문화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기능을 한다. 유장한 호흡과 잦은 쉼표로 내면의 진솔한 고백을 담아낸다. 내면의 독백이 사실적으로 전달되는 이 시의 산문적 어조는 압축과 절제의 방식보다 화자의 회한과 숙고를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러한 어조로 인해 이 시의 진정성은 더욱 드러난다.

 

 이 시는 민족의 고난과 함께 하는 유랑생활의 비애를 그리면서도 숭고하고 강한 의지를 지향하는 고매한 정신을 제시하여 한국시의 수준을 드높이 끌어올린 작품이다.

 

 

작자 백석(白石, 1912~1996)


 

 평안북도 정주 출생. 본명이 기행(夔行). 오산고보 졸업 후 일본 아오야마학원 전문부 영어 사범학과 졸업. 1930년 열아홉 나이로 조선일보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그 모()와 아들>로 등단했다. 후에 조선일보사에 입사해 계열 잡지인 여성의 편집을 맡았으며, 조선일보에 산문 <이설(耳說) 귀ㅅ소리>비롯하여 번역 산문 <임종 체호프6>, <죠이쓰와 애란(愛蘭) 문학>, 단편 <마을의 유화(遺話)>(1935)등을 발표한 후 시 창작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1935조광에 시 <정주성(定州城)> <산지> <주막> <나와 지렝이> <> <여우 난 곬족()> <흰 밤> 등을 발표한다. 백석이 1936년 조광인쇄주식회사를 통해 펴낸 첫 시집 사슴은 우리 문학사에서 독특한 시의 영역을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고향인 정주로 돌아가 1947년 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는 일에 매진하였다. 1948학풍창간호에 발표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남쪽 잡지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였다. 그 후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1996년 사망하였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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