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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모닥불 / 백석

by 혜강(惠江) 2020. 3. 1.

 

 

 

 

모닥불


 

- 백 석 

 

 

 새끼 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헝겁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 사위도 갓 사돈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시집 《사슴》(1936) 수록

 

 

◎시어풀이

 

*새끼오리 : 새끼줄. ‘오리’는 ‘올’의 평안도 방언.

*갓신창 : 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질긴 끈의 한 종류 또는 가죽으로 만든 신의 창

*개니빠디 : 개의 이빨

*너울쪽 : 널판지 쪽

*닭의 짗 : 닭의 깃털

*재당 : 학덕 높은 집안의 어른

*초시 : 과거의 첫 시험. 또는 그 시험에 급제한 사람.

*문장(門長) : 한 문중에서 항렬과 나이가 제일 위인 사람

*불쌍하니도 : 불쌍하게도

*몽둥발이 : 딸려 붙었던 것이 다 떨어지고 몸뚱이만 남은 물건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모닥불에 타들어 간 온갖 사물과 그 주변에 모여 불을 쬐는 사람들과 짐승들을 통해 일체화된 마을 공동체적 삶의 모습과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 시는 현재 상황과 과거 회상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토속적이며 향토적인 느낌의 일상어를 사용하여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아우름’의 의미를 더해 주는 보조사 ‘ ~도’로 사물과 사람을 치밀하게 열거하여 리듬감을 형성하고 주제 의식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화자는 모닥불을 쬐고 있는 사람으로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현재의 정황(1,2연)과 과거를 회상한다(3연). 1연에서는 사소한 것들의 모여서 타는 모닥불을, 2연에서는 모닥불을 쬐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동물들을, 3연에서는 모닥불에 깃든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1연은 성격이 비슷한 사물끼리 둘씩 묶어 성질이 같은 것과 다른 것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 준다.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쓸모없는 것들이 모여 함께 모닥불의 불길을 일으키는 어울림, 즉 조화와 합일의 모습을 보여 준다.

 

 2연에서는 성격이 서로 대조되는 사람끼리 묶어 다양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과 동물들이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모닥불을 쬐는 모습을 통하여 평등한 공동체적 삶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1연과 2연의 현장에 있는 사물과 사람, 동물은 하찮고 쓸모없거나 이질적인 존재들인데 모닥불은 이들을 아우르고 포용한다.

 

  그리고 3연에서는 1, 2연과 대비시키면서, 과거 고아로 서럽게 사신 할아버지의 모습을 회상하며 우리 민족의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를 환기시킨다. ‘몽둥발이’는 딸려 붙었던 것이 다 떨어지고 몸뚱이만 남은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삶의 역사는 궁극적으로 비극적인 민족 공동체의 모습인 것이다. 이 장면에서는 화자의 슬픈 정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시는 모닥불의 속성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단순하고 소박한 시어를 나열하여,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화합하는 공동체적 삶의 모습과 그 이면에 놓인 민족의 비극을 형상화한 것이다.

 

 

작자 백석(白石, 1912~1995)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평안북도 정주 출생. 1929년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그 모()와 아들>이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다. 그해 조선일보 후원 장학생으로 일본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청산학원)] 영문과에 유학했다. 1934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잡지 여성편집을 맡았으며 시 <정주성(定州城)> 등을 발표했다.

 

 193633편의 시가 실린 시집 사슴을 자비로 100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면서 순수 서정시인으로 선풍을 불러일으켰다.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 등으로 재직하다 만주로 가 방랑 생활을 했으며 광복 후 고향 정주로 돌아갔다가 북한 체제에 남게 됐다. 북한에서는 번역과 동화시 창작에 주력하다 숙청당한 뒤 1963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나중에 그가 1995년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향의식(失鄕意識)을 한국 고유의 가락에 실어 노래한 향토색 짙은 서정시로 1930년대 한국문단에서 활동했으며, 유일한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다. 1980년대 들어와 백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의 작품을 모은 백석시전집(1987)이 출간되었다.

 

 주요 작품으로 <여승>, <여우난곬족>, <모닥불>.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등이 있다. 그는 주로 서민들의 삶을 토속적인 언어로 현실감 있게 그려 내면서 우리 민족 공동체의 정서를 드러내었다. 또한 여행 중에 접한 풍물이나 체험을 표현한 기행 시와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창작하였다.

 

 백석 시인이 즐겨 사용한 것은 반복과 나열과 부연으로 어떤 사실이나 정황 등을 줄줄이 이어 나가는 엮음의 구문이다. 사설시조, 휘모리장단 등의 전통 시가의 주된 표현 형태인 이 엮음의 구문은, 말이 연속적으로 엮어지기 때문에 흥미와 속도감을 유발하며, 개별 장면이나 상황의 정서를 강화, 확대시켜 장면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시도는 우리말 구문의 개척이라는 백석 시의 문학적 성취를 가리키는 것이다.

 



 

*해설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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