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원(八院)
- 서행 시초(西行詩抄) 3
- 백 석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 승합자동차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자성(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은 예서 삼백오십리 묘향산 백오십리
묘향산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새하얗게 얼은 자동차 유리창 밖에
내지인(內地人) 주재소장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차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 《조선일보》(1939.11.10)
<시어 풀이>
팔원(八院) : 지명, 평안북도 영변군 팔원
내지인 : ‘일본 본토인’이란 뜻으로 일본인이 스스로를 일컫던 말.
내임 : ‘요금’이라는 뜻의 일본말.
▲이해와 감상
이 시는 4편으로 된 <서행 시초(西行詩抄)> 중 세 번째 작품으로, 묘향산행 승합차에서 만난 계집아이의 모습을 통해, 일제 강점하에서 힘들게 살았던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여승>과 함께 백석의 대표적인 리얼리즘 시로 거론되는 이 시는 가족 공동체조차 유지할 수 없도록 한 일제의 식민지 수탈의 참혹상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시의 화자는 추운 겨울, 평안북도 영변군 팔원면 소재 한 시외버스에서 손등이 몹시도 터진 나이 어린 여자아이가 삼촌이 사는 곳을 찾아가며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본다. ‘차디찬 아침’은 시련과 고난의 이미지로 일제 강점 하의 혹독한 현실을 나타내며 손등이 몹시도 터진 어린아이는 그런 상황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야 했던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 또한, 행선지인 자성(慈城)을 ‘묘향산 어디메’라고 불분명하게 표현한 것은 방향성을 상실한 우리 민족의 삶을 표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새하얗게 얼은’ 역시 고난과 시련의 이이지이며, ‘계집아이가 운다, 느끼며 운다’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슬픔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반복법을 이용하여 강조한 것이다. ‘차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는 화자가 자신을 객관화한 표현으로 계집아이에 대한 연민(憐憫)이 드러나 있는데, 이러한 연민의 정은 마지막 부분인 13~16행에서 보여주는 화자의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승합자동차에 동승한 화자가 어린아이를 보면서 연민의 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몇 해고, 주재소장 집에서 밥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꽁꽁 언 손으로 일할 것을 생각하니 불쌍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나아가 앞으로도 더 길게 이어질 그 소녀의 고달픈 삶의 역정을 상상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이러한 비극적 상황을 담담한 어조로만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이 이 작품의 비극성을 한층 두드러지게 해 주고 있다. 물론 이 시는 화자가 현실의 모순을 깊이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극복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없이 다만 객관적 사실의 제시로만 그치고 말았다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백석의 시가 유년의 체험과 그에 대한 강렬한 향수에만 지나친 집착을 보이는 일종의 퇴행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의 시는 모든 것을 황폐화시키는 일제의 가혹한 힘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려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또는 자신의 순진무구한 유년의 공간 속에서 안식과 평화를 누리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작자 백석(白石, 1912~1995)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평안북도 정주 출생. 1929년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다. 그해 조선일보 후원 장학생으로 일본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청산학원)] 영문과에 유학했다. 1934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잡지 《여성》 편집을 맡았으며 시 <정주성(定州城)> 등을 발표했다.
1936년 33편의 시가 실린 시집 《사슴》을 자비로 100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면서 순수 서정시인으로 선풍을 불러일으켰다.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 등으로 재직하다 만주로 가 방랑 생활을 했으며 광복 후 고향 정주로 돌아갔다가 북한 체제에 남게 됐다. 북한에서는 번역과 동화시 창작에 주력하다 숙청당한 뒤 1963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나중에 그가 1995년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향의식(失鄕意識)을 한국 고유의 가락에 실어 노래한 향토색 짙은 서정시로 1930년대 한국문단에서 활동했으며, 유일한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다. 1980년대 들어와 백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의 작품을 모은 《백석시전집(1987)》이 출간되었다.
주요 작품으로 <여승>, <여우난곬족>, <모닥불>.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등이 있다. 그는 주로 서민들의 삶을 토속적인 언어로 현실감 있게 그려 내면서 우리 민족 공동체의 정서를 드러내었다. 또한 여행 중에 접한 풍물이나 체험을 표현한 기행 시와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창작하였다.
백석 시인이 즐겨 사용한 것은 반복과 나열과 부연으로 어떤 사실이나 정황 등을 줄줄이 이어 나가는 ‘엮음’의 구문이다. 사설시조, 휘모리장단 등의 전통 시가의 주된 표현 형태인 이 엮음의 구문은, 말이 연속적으로 엮어지기 때문에 흥미와 속도감을 유발하며, 개별 장면이나 상황의 정서를 강화, 확대시켜 장면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시도는 우리말 구문의 개척이라는 백석 시의 문학적 성취를 가리키는 것이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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