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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바다와 나비 / 김기림

by 혜강(惠江) 2020. 3. 1.


<출처 : 다음카페 '짧은 사랑 긴이별'>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여성(1939.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거대한 바다와 연약한 나비의 색채 대비를 통해 모더니즘 시의 회화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시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좌절을 형상화하고 있다.

 

 시의 화자는 나비의 관찰하고 있는 사람으로, 대상에 대한 객관적이고 절제된 태도로 주지적인 시풍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다시 말하면, 이 시는 나비바다가 갖는 두 이미지의 대조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마리의 조그맣고 연약한 나비가 거대하고 냉혹한 바다가 대조를 이루고, 나비의 흰색과 바다의 청색과의 색채 대비가 선명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시는 회화적 심상을 중시하는 모더니즘 시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에 속한다.

 

 또. 표현상에 있어서 각 연은 객관적이고 단호한 성격의 종결 어미 로 끝냄으로써 대상에 대해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시적 긴장을 느끼게 한다. 이런 점에서도 이 시는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의 회화적 특성과 문명 비판적 성격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연에서는 바다의 무서움을 모른 채 바다에 다가가는 나비의 순진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때 바다는 깊은 수심을 지닌 거대한 세계이고, 그 바다를 날고 있는 나비는 바다의 수심, 즉 세계의 위험성과 비정함을 모르는 연약한 존재이다.
 

 2연에서는 바다에 날아갔다가 바다의 냉혹함에 지쳐 돌아오는 나비의 모습을 보여 준다. 여기서 청 무우밭은 나비에게 있어 낭만적 꿈의 공간이며 나비가 지향하는 세계이다. 어린 나비는 바다를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 세계로 알고 다가가지만, 바다는 나비에게 낭만적 꿈에 대한 허망한 좌절을 안겨 준다. ‘어린 날개’, ‘공주처럼과 같은 표현은 이와 같이 현실 세계의 어려움을 모르는 순진하고 연약한 나비의 모습을 드러낸다.
 

 3연에서는 바다의 무서운 깊이를 알게 된 나비의 지친 모습을 감각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바다가 나비가 꿈꾸는 청 무우밭이 아니어서 서글퍼진 흰나비의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겹쳐지면서, 거대한 바다의 무서운 깊이를 경험하고 그 냉혹한 현실 앞에서 꿈이 좌절된 채 돌아온 나비의 슬픈 비행이 차갑고 시린 아픔을 느끼게 한다.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라는 표현은 시각적 이미지를 촉각화한 것으로 주지주의 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표현으로, 냉혹한 현실로 인해 좌절된 나비의 꿈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시를 사회·문화적 맥락을 고려한다면, ‘흰나비는 일제 강점기와 근대화 과정 속에서 겪었던 지식인들의 지향과 탐색, 방황과 좌절을 표상한 것으로도 볼 수 있으며, ‘바다는 역사 혹은 운명과 같은 거대한 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힘없이 날개만 파닥거리던 당시 식민지 지식인의 초라한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끼게 된다.

 


작자 김기림(金起林, 1908~?)

 

 시인 · 평론가, 함북 학중 출생. 1930년대 초반에 조선일보기자로 활약하면서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하였다. 8·15 광복 후 조선 문학가 동맹에서 활동하면서 사회의식을 짙게 드러내는 시를 썼으며,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 시의 주지성(主知性)과 심상을 강조했으며, 평론가로도 주목받았다. 시집으로 기상도(1936),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새 노래(19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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