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하관'>
하관(下棺)
- 박목월
관(棺)을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
주여
용납하옵소서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 하직했다.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알아보고
형(兄)님!
불렀다.
오오냐 나는 전신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
이제
네 음성을
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쓰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
- 출전 《난(蘭). 기타》(1959)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아우의 장례를 치른 화자가 아우를 잃은 슬픔과 그리움을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절제된 표현을 써서 상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평이한 시어를 사용하였으며, 화자의 정서를 의성어를 통해 드러냈고, 하강적 이미지와 중의적 표현을 통해 표현 효과를 높이고 있다.
단연 26행으로 된 이 작품은 내용상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7행은 죽은 아우의 관을 땅에 묻는 아우의 장례식 장면을, 8-17행은 꿈속에서 아우를 만나 이승과 저승의 거리감을 느끼는 내용을, 18~26행은 아우의 죽음으로 인해 이승과 저승의 거리감과 삶의 덧없음을 표현하고 있다.
시의 제목인 ‘하관’은 관을 무덤의 구덩이에 내리는 장례절차 중 하나인데 먼 길을 떠나면서 작별을 고한다는 뜻으로 죽은 아우와의 이별을 의미한다. ‘관이 내렸다’라고 표현한 것은 차마 자기 손으로 아우의 관을 땅속에 묻을 수 없다는 화자의 심정이 드러내는 것이며, 또,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은 화자의 마음속에 아우의 관을 묻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좌르르 하직했다’라는 관 위로 흙이 떨어져 내렸다는 뜻과 아우와 작별했다는 중의적(重義的) 표현이다. ‘좌르르’는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슬픔과 비애를 의성어의 사용으로 실감 나게 형상화하면서 감정의 노출을 자제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장례 이후, 화자는 아우와의 만남의 매개체인 ‘꿈’을 통해서 아우와 만난다. ‘턱이 긴 얼굴’의 동생이 ‘형님!’하고 부른 것은 아우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된 환청(幻聽)을 표현한 것이며, ‘오오냐, 나는 전신으로 대답했다’는 아우를 만난 반가움을 절실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이어서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로 죽은 아우와의 거리감을 느낀다. 그래서 화자는 ‘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이라고 집약하고 있는 대목에 와서 절실하게 이승과 저승의 거리감과 이질감을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눈과 비’는 아우가 가 버린 저승과는 달리 내가 사는 이곳은 눈이 오고 비가 내리는 현실 세계라는 이질감과 거리감의 표현이다. 또한,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하강의 이미지를 눈과 비의 떨어져 내림으로 구체화했다. '눈'과 '비'는 아우를 잃은 슬픔과 눈물을 연상케 해 주는 사물로 볼 수 있다.
이어 화자는 ‘너는/ 어디로 갔느냐’며 아우에 대한 그리움을 외치며, ‘내 목소리가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이라는 말로 함축성 있게 응결되면서 마무리된다. '툭하는 소리‘는 아우가 없는 세상에서 느끼는 적막감을 표현한 것으로 아우에 대한 끊을 수 없는 그리움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열매가 떨어지면’의 ‘떨어지면’은 앞의 ‘내렸다’, ‘내리듯’, ‘하직했다’, ‘눈과 비가 오는’, ‘떨어지면’과 함께 하강적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런 하강적 이미지는 모두 위에서 아래로의 수직적 운동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승과 저승의 갈림에서 오는 슬픔, 그리고 양자 사이의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감 등을 환기하며 화자의 아우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 표현은 아우의 죽음에서 오는 인생의 허무감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신생· 성장· 사멸하는 생물체의 생의 순환이 존재하는 것이 이승의 삶임을 상징한다. 열매가 맺는 것을 삶 그 자체라고 한다면, 열매가 떨어지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므로 이곳은 일회적이고 찰나적 세계일 수밖에 없음을 화자는 절감하며 더 깊은 무상감에 젖어 드는 것이라 하겠다.
이 시는 박목월 시인의 제2기에 속하는 작품으로, 자연 서정을 주로 노래한 초기 청록파 시대의 시 세계를 벗어나 일상적인 삶 속에서 인간의 내면세계를 깊이 탐구하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참고 <박목월의 시 세계>
박목월 시인의 시적 경향은 시대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제1기는 민요적 가락에 향토색 짙은 서정을 노래한 《청록집》, 《산도화》의 시기이며, 제2기는 생활 속의 소시민으로 소박하고 담담하게 생활과 밀착된 현실적인 시를 쓴 《난, 기타》, 《청담》의 시기이며, 제3기는 토속적인 시어를 구사하면서 영혼과 내면의 세계를 추구한 《경상도 가랑잎》, 《무순》의 시기로 나누어진다.
다시 말하면, 제1기 무렵의 시는 정형의 율조에서 오는 음악적인 효과와 토속적인 소재로 자연의 서정을 표현하는 특징을 지닌다. 그리고 시각과 청각이 잘 조화된 선명한 이미지에 여운이 담긴 시풍을 보인다. 제2기는 초기 시에서 볼 수 있었던 운율의 정형성을 탈피하여 서술적 이미지를 추구하였다. 현실에 관하여 관심을 보이면서 생활 속의 자아를 탐구한 시기로 주제는 거의 다 가정적인 문제로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제3기는 문명 비판적인 경향을 보이면서 토속적인 방언의 묘미를 살려 신에 대한 경건한 자세를 표백한 시기로 지적 요소가 부각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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