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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가정(家庭) / 박목월

by 혜강(惠江) 2020. 3. 3.

 

 

<출처 : 다음 블로그 'star & staff'>

 

 

 

가정(家庭)

 

 

-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반(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 시집 청담(晴曇)(1964)

 

 

<시어 풀이>

 

문수 : 신발의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 1=2.4

들깐 : 다용도실(창고)의 경상도 방언.

알전등 : 갓 따위의 가리개가 없는 전구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힘겨운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한 가정의 아버지의 삶을 신발에 빗대어 가장으로서 느끼는 책임감과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으로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의 화자는 로 시인이며 사랑하는 아홉 명의 자식을 거느리고 고달픈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시에서 화자는 그의 자녀들을 강아지러고 부른다. 얼음판 같은 세상을 살면서 다소 비감스럽던 화자의 목소리는 자녀들에게 말을 건넬 때, 따뜻하게 바뀌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시의 특징은 첫째, 사용된 시어가 주로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평범하고 쉬운 언어라는 것이며, 둘째는 화자 자신(아버지)과 자식들을 '신발'에 비유하여 나타내는 대유적 표현을 사용한 것이며, 셋째는 '세상살이의 고난, 역경'을 뜻하는 상징적 시어를 사용하였으며. 넷째는 '아홉 컬레의 신발'(아홉 명의 자식)과 십구 문 반의 신발 (아버지=화자 자신)을 대조적 표현하였으며, 또한 '육 문 삼의 신발''십구 문 반의 신발'의 대조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현실적 세계를 시적 대상으로 삼은 생활시로서의 진면목을 보여 주고 있다.

 

 모두 4연으로 된 이 시의 1연은 저녁 무렵 화자의 귀가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피곤한 육신을 이끌고 집에 돌아온 화자는 현관에 가지런히 놓인, 문수가 각기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바라본다. 가난하면서도 행복한 화자의 가정이 아홉 켤레의 신발 속에 함축되어 있다. 직업이 다르고 신분이 달라도, 또는 부유하건 가난하건, 그래서 그것이 현관이건 들깐이건 사람 사는 모습은 결국 똑같다. 그러므로 '지상'이라는 시어는 힘겨운 일상의 삶이라 할지라도 일단 가정으로 돌아오게 되면, 가정은 그 가족만의 하나의 행복한 지상 세계라는 뜻이라 할 것이다.

 

 2연에서 화자는 고단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귀가한 가장을 보여준다. 화자는 식구들의 신발 옆에 자신의 신을 벗어 놓는다. '눈과 얼음의 길'은 바로 화자가 살아가는 고달픈 인생길을 상징하는 것으로, 4연에서는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아홉 켤레의 신발 중에서 특히 막내둥이의 것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막내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강조하는 것이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스스로 확인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십구 문 반육 문 삼의 대조가 인상적이며,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는 반복법과 돈호법을 사용하여 막내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 표현이다.

 

 3연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스스로를 향한 연민을 표현하고 있다. 12행은 비록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온 화자이지만, 자녀 앞에서는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35행은 고달프게 살아가는 화자의 가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연민한 삶의 길이여'라는 6행은 화자가 삶에 대해 느끼는 힘겨움을 직설적으로 토로한 것이며, 7행에서뿐 아니라 작품 전편에 등장하는 '내 신발은 십구 문 반'이라는 구절은 막내의 '육 문 삼'과 대비되어 화자가 자신의 신발을 거듭 의식하면서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다.

 

 4연은 가족을 향한 사랑과 현실 극복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4영 전부가 화자가 방에 들어가며 자식들에게 들려주는 말로 표현되었다.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는 표현은 2연의 눈과 얼음의 길과 함께 현실 생활에 시달리는 화자의 고달픈 삶을 극명히 보여주는 것이며, 비록 고달프게 살아가는 가정이지만,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십구 문 반'이라는 신발 크기로 강조하는 것은 그 큰 신발 속에 아홉 명의 자식들의 미래를 담고 있다는,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책무를 강조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라는 마지막 표현으로,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험난한 현실을 극복해 나가겠다는 화자의 의지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생활 속의 소시민으로 소박하고 담담하게 생활과 밀착된 현실적인 시를 쓴, 박목월의 중기 작품에 해당하는 것으로,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자식들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힘겨운 아버지들의 모습과 고달픈 현실 극복의 의지를 화자의 가정을 통해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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