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開花) / 이호우
개화(開花) - 이호우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빛도 숨을 죽이네. 나도 아려 눈을 감네. - 《현대문학》(1962.5) ▲이해와 감상 이호우는 현대시조의 큰 산맥이다. 시조문학사에서 가람과 노산이 현대시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면 이호우는 초정(艸丁)과 더불어 그 뒤를 이어받아 현대시조의 개화기를 열었다. 그의 작품으로 , , , 등은 연시조들이고, , , , , , 등은 단시조인데 이들 단시조는 작기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는 총 글자가 53자에 불과한 작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그 신비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보통의 평시조보다는 좀 늘어진 글자 수를 가졌으면서도 시조로서의 형식미(形式美)에 ..
2020. 2. 13.
별 헤는 밤 / 윤동주
별 헤는 밤 - 윤 동 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는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2020. 2. 10.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 최남선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 최남선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내게는, 아무것, 두려움 없어, 육상에서, 아무런, 힘과 권(權)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서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 지금까지 있거든 통기하고 나서 보아라. 진시황, 나파륜, 너희들..
2020. 2. 10.
불놀이 / 주요한
불놀이 - 주요한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江)물 우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四月)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 밀어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城門) 우에서 나려다보니, 물냄새, 모래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不足)하여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過去)의 퍼런 꿈을 찬 강(江)물 우에 내어던지나 무정(無情)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
2020.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