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767

바람의 말 / 마종기 바람의 말 -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 2020. 2. 8.
봄 / 이성부 ▲ 일러스트=잠산 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2020. 2. 8.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소리 호르락.. 2020. 2. 8.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김선우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김선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 2020. 2. 8.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일러스트 권신아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 2020. 2. 8.
나그네 / 박목월 ▲ 일러스트=잠산 나그네 - 박목월 강(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해설> - 문태준·시인 이 시는 박목월(1916~1978)이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펴낸 3인 시.. 2020. 2. 8.
봄 바다 / 김사인 ▲일러스트=권신아 봄 바다 -김사인 구장집 마누라 방뎅이 커서 다라이만 했지 다라이만 했지 구장집 마누라는 젖통도 커서 헌 런닝구 앞이 묏등만 했지 묏등만 했지 낮잠 곁에 나도 따라 채송화처럼 눕고 싶었지 아득한 코골이 소리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지 미끈덩 인물도 좋은 구장집 .. 2020. 2. 8.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 일러스트=잠산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 2020. 2. 8.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 송찬호 ▲ 일러스트=권신아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 송찬호 누가 저기다 밥을 쏟아 놓았을까 모락모락 밥집 위로 뜨는 희망처럼 늦은 저녁 밥상에 한 그릇씩 달을 띄우고 둘러앉을 때 달을 깨뜨리고 달 속에서 떠오르는 노오란 달 달은 바라만 보아도 부풀어오르는 추억의 반죽 덩어리 우리가.. 2020. 2. 8.
수묵(水墨) 정원 9 - 번짐 / 장석남 수묵(水墨) 정원 9 - 번짐 -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 2020. 2. 8.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 장정일 ▲일러스트=권신아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 장정일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굵직한 나무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한됫박 녹말이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깨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 2020. 2. 8.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 / 박재삼 ▲일러스트 잠산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을 보것네. 저것 .. 2020. 2. 8.
노동의 새벽 / 박노해 노동의 새벽 -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 2020. 2. 8.
눈물 / 김현승 눈물 - 김현승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生命)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들이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 2020. 2. 8.
그리스도 폴의 강(江) 1 / 구상 ▲일러스트=권신아 그리스도 폴의 강(江) 1 - 구상 아침 강에 안개가 자욱 끼어 있다. 피안(彼岸)을 저어가듯 태백(太白)의 허공속을 나룻배가 간다. 기슭, 백양목(白楊木) 가지에 까치가 한 마리 요란을 떨며 날은다. 물밑의 모래가 여인네의 속살처럼 맑아 온다. 잔 고기떼들이 생래(生來).. 2020. 2. 8.
섬진강 / 김용택 섬진강1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 2020. 2. 8.
생명의 서(書) / 유치환 ▲일러스트=권신아 생명의 서(書)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 2020. 2. 8.
의자 / 이정록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일러스트 잠산 - 문태준 시인 어른의 말씀을 받아 적기만 해도 시가 될 때가 많다. 주름살 사이에서 나온 말씀이기 때문이다. 짧고 두서없이 울퉁불퉁 불거져 나온 말이지만 마늘처럼 매운 맛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어머니가 무심코 던진 말씀으로부터 태어났다. .. 2020. 2. 8.
칼로 사과를 먹다 / 황인숙 ▲일러스트 : 권신아 칼로 사과를 먹다 - 황인숙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 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 2020. 2. 8.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 2020. 2. 8.
농무(農舞) / 신경림 ▲ 일러스트=권신아 농무(農舞)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주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 2020. 2. 8.
방심(放心) / 손택수 ▲일러스트 : 잠산 방심(放心) - 손택수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 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다가, 스윽, 제비 한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낯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지나가버렸다 집이 잠시 어안.. 2020. 2. 8.
진달래꽃 / 김소월 ▲일러스트 = 권신아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 2020. 2. 8.
마음의 수수밭 / 천양희 ▲일러스트 잠삼 마음의 수수밭 -천양희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잎 몇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 2020. 2. 8.
반성 704 / 김영승 반성 704 -김영승 밍키가 아프다 네 마리 새끼가 하도 젖을 파먹어서 그런지 눈엔 눈물이 흐르고 까만 코가 푸석푸석 하얗게 말라붙어 있다 닭집에 가서 닭 내장을 얻어다 끓여도 주어보고 생선가게 아줌마한테 생선 대가리를 얻어다 끓여 줘 봐도 며칠째 잘 안 먹는다 부엌 바닥을 기어다.. 2020. 2. 8.
절벽 / 이상 ▲ 일러스트=잠산 절벽 - 이 상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거기묘혈을판다. 묘혈도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속에나는들어앉는다. 나는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 꽃은보이지않는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잊어버리고재차거기묘혈을판다. 묘혈은보이지않.. 2020. 2. 8.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그 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 2020. 2. 8.
조국(祖國) / 정완영 조국(祖國) - 정완영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애인 사랑 손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 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 2020. 2. 8.
국토서시(國土序詩) / 조태일 국토서시(國土序詩) - 조태일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 2020. 2. 8.
일찌기 나는 / 최승자 <시> 일찌기 나는 - 최승자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2020.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