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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청포도 / 이육사

by 혜강(惠江) 2020. 2. 10.

 

 

 

 

 

청포도

 

 

  -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작품해설과 감상-권영민·시인

 

 

  1939문장(文章)8월호에 발표한 이육사의 시 작품이다. 남성적이고 의지적인 어조를 주로 사용한 다른 작품에 비해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가진 점이 특징이다. 청색과 백색의 선명한 색채 대비를 통해 밝고 희망적인 느낌을 주고 있으며, 전통적 소재를 활용하여 정감어린 고향의 정경을 표현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청포도를 통해 밝은 미래가 담긴 전설을 마주하며,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을 꿈꾸는 공동체의 원초적 연대의식을 돌이키고 있다. 그가 기다리는 청포를 입고 찾아오는 손님은 이육사의 또 다른 작품인 광야에 등장하는 백마 타고 오는 초인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투쟁했던 지사들의 모습이자, 평안한 삶에서 분리되어 유랑하는 고달픈 자들을 대변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기다린 그를 맞아 순수하고 고결한 은쟁반”, “하이얀 모시 수건과 더불어 청포도를 대접하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모습은 그 날을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가짐을 잘 나타내고 있다. 즉 미래를 향한 티 없이 맑고 깨끗하며 정성스러운 기다림과 간절한 심정이 바로 그것이다. 식민지 상황을 감안할 때 시인이 이토록 기다리는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여는 그 날은 바로 조국 광복이 이루어지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시인은 청포도라는 소재를 통해 밝고 선명한 분위기를 형성하여 억압된 시대의 장벽을 넘어 평화로운 삶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자신의 소망을 잔잔하게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은 청포도, 하늘, 푸른 바다, 청포로 대표되는 청색과, 흰 돛단배, 은쟁반, 하이얀 모시 수건으로 대표되는 백색의 대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밝고 선명한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오랜 희망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다 맑고 투명하게 전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마을 전설, 돛단배, 청포, 모시 수건 등의 향토적 소재와 더불어 우리의 전통시가에 상투적으로 쓰이던 아이야라는 표현은 이 시의 전통적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출처> 한국현대문학대사전(2004.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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