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헤는 밤
- 윤 동 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는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어 풀이>
*프랑시스 잠 : 프랑스의 시인. 자연의 풍물을 종교적 감정에 찬 애정으로 순박하게 노래함.
*라이너 마리아 릴케 : 보헤미아 태생의 독일 시인. 인간 존재에 대하여 끝없이 탐구하며 독일 현대시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음.
*별 : 과거 회상의 매개체, 화자가 지향하는 내적 세계, 그리움의 대상
*밤, 겨울 : 고난과 시련, 어두운 현실, 암담한 현실(일제 강점기)
*봄 : 희망, 재생과 부활, 조국의 광복
*파란 잔디, 풀 : 부활과 재생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밤하늘의 별을 통해 아름다웠던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이상에 대한 동경과 자기 성찰을 보여 주는 화자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부정적 현실 속에서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화자가 자기반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통해 현재의 삶을 극복하고자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시는 ‘현재(1-3)-과거(4-7)-현재(8-9)-미래(10)’의 시간적 흐름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고 있는데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1~3연)은 별이 총총한 가을밤을 배경으로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더듬는 한 젊은이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두 번째 부분(4~7연)은 별을 하나하나 헤아리며 아름다운 어린 시절에 대한 화자의 애틋한 그리움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4연과 5연은 어조와 리듬의 변화를 통해 이들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인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세 번째 부분(8~9연)은 화자의 자기 성찰의 모습을 보여 준다. 자신의 이름을 ‘별’이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는 시적 화자의 행위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현재의 시대 상황 속에 서 있는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에 대한 반성을 나타낸다. 네 번째 부분(10연)은 지금까지 시대적 아픔과 갈등의 어두운 세계 속에서 고뇌를 거듭했던 화자가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다짐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별’의 기능과 의미
‘별’은 화자에게 있어 과거 회상의 매개체로서의 기능을 지닌다. 또한 ‘별’은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 시’ 등 화자가 지향하는 내적 세계를 나타내는 동시에, 화자가 그리워하는 세계에 속한 ‘아름다운 이름들’을 비유하고 있다. 화자가 그리워하는 세계에 속한 것들은 아름답지만, 공간적으로 멀리 있으며(‘북간도’, ‘외국 시인’), 시간적으로도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있다. 이런 점에서 화자가 그리워하는 세계에 속한 것들의 실상은 ‘별’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진다. ‘별’은 ‘어둠 속에 아름답게 반짝이는, 그러나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 북간도 출생. 일본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재학 중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이듬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1941년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19편의 시를 묶은 자선 시집(自選詩集)을 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가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사후에 햇빛을 보게 되어, 1948년에 유고 30편이 실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간행되었다. 주로 1938~1941년에 쓰인 그의 시에는 불안과 고독과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과 용기로 현실을 돌파하려는 강인한 정신이 표출되어 있다. 작품으로 ‘자화상’(1939), ‘또 다른 고향’(19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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