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네이버블로그 '리틀개굴' celibate>
참회록(懺悔錄)
-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ㅡ만 이십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는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ㅡ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둣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시어 풀이>
구리거울 : 패망한 조선 왕조의 유물.
왕조(王朝) : 같은 왕가에 속하는 통치자의 계열, 또는 그 왕가가 다스리는 시대.
참회(懺悔) :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침.
운석(隕石) : 지구에 떨어진 별똥별의 잔해.
이 시에는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시인의 삶에 대한 자세가 잘 드러나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이 시의 1∼3연은 화자가 ‘과거(1연) → 현재(2연) → 미래(3연)’로 이어지는 자신의 삶을 차례로 참회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1연에서는 망국민으로서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과거 역사 속의 삶을 ‘욕되다’고 느끼고(과거 역사에 대한 참회), 2연에서는 현재 시점에서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망국민으로서 아무런 기쁨도 없이 무기력하고 괴롭게 살아온 자신의 삶 전체를 참회하고 있다. (지나온 삶에 대한 현재의 참회)
3연에서는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참회를 다시 참회한다. 미래의 ‘즐거운 날’을 생각해 볼 때, 화자는 치욕스러운 역사적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소극적 참회에만 그쳤던 현재의 참회를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현재의 참회에 대한 미래의 참회)
이어 4연에서는 화자가 앞서 행한 참회의 과정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치열한 자기 성찰의 의지를 보여 준다.(어두운 현실과 자기 성찰)
5연에서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자세로 잘못된 현실과 맞서는 삶을 선택한 사람이 필연적으로 맞게 될 미래의 비극적 모습을 전망하고 있다. (미래의 삶에 대한 전망)
화자가 보여 주는 자기 성찰의 자세가 치열하지만 잘못된 현실에 맞서기에 개인은 너무나 작고 힘없는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결코 비관적 체념이 아닌, 시대적 양심의 실천을 바탕으로 한 보다 철저한 자기 성찰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인. 북간도 출생. 일본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재학 중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이듬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1941년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19편의 시를 묶은 자선 시집(自選詩集)을 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가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사후에 햇빛을 보게 되어, 1948년에 유고 30편이 실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간행되었다. 주로 1938~1941년에 쓰인 그의 시에는 불안과 고독과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과 용기로 현실을 돌파하려는 강인한 정신이 표출되어 있다. 작품으로 ‘자화상’(1939), ‘또 다른 고향’(19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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