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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오다 가다 / 김 억

by 혜강(惠江) 2020. 2. 10.


<출처 : 다음 블로그 'thlee1946'>



오다 가다

- 김 억


오다 가다 길에서  
만난 이라고,
그저 보고 그대로
예고 말건가

()에는 청청(靑靑)
풀 잎사귀 푸르고
해수(海水)는 중중(重重)
흰 거품 밀려든다.

산새는 죄죄
제 흥()을 노래하고
바다엔 흰 돛
옛길을 찾노란다.

자다 깨다 꿈에서
만난 이라고
그만 잊고 그대로  
갈 줄 아는가.

십리 포구(十里浦口) () 너머
그대 사는 곳
송이송이 살구꽃
바람에 논다.

수로 천리(水路千里) 먼 길  
왜 온 줄 아나?
옛날 놀던 그대를
못 잊어 왔네.


                           1929. 11 <조선시단> 창간호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산수(山水)와 조화된 한국인 특유의 인정미를 75조의 가락을 빌어 노래하고 있다. 그리움을 노래하는 시들이 대체로 애틋하고 침울한 분위기를 띠는 데 반해, 이 시는 경쾌한 3음보 리듬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자연과 시적 화자의 정감이 어우러져 오히려 밝고 정겨운 느낌을 주고 있다.


  이 작품의 기본 정서는 다분히 한국적으로 자연과의 합일과 과거 속으로의 회귀 욕구가 담담한 독백체 어투로 잘 나타나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因緣)'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연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심성 구조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이 작품에서 시적 화자는 '오다 가다 길에서 / 만난 이'를 못 견디게 그리워한다.

 

  '자다 깨다 꿈에서'까지 만날 정도로 정든 그 사람이, '짙어가는 풀잎'처럼, '밀려오는 파도'처럼 그리워 시적 화자는 마침내 '십리 포구 산 너머' 그를 찾아 나선다. 시적 화자는 그와의 인연을 '그만 잊고 그대로 / ' 수 없는 소중한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청청''중중''죄죄'와 같은 음성 상징어와 청백(靑白)의 대비를 통한 선명한 이미지 제시 방법으로써 밝고 경쾌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치 '죄죄 / 제 흥을 노래하''산새'처럼, '송이송이 / 바람과 노''살구꽃' 향기처럼, '십리 포구 산 너머'를 향하는 시적 화자의 발걸음은 하늘을 날아오를 듯 가벼워진다.

 

<출처> 양승준, 양승국 공저 [한국현대시 400-이해와 감상]

 

 

작자 김억(金億)

 

  시인·평론가. 본명은 희권(熙權). 필명은 안서(岸曙).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 오산중학(五山中學)을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문과를 중퇴한 후 모교인 오산중학과 평양 숭덕학교(崇德學校)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한때 동아일보와 경성방송국에 근무하였다. 20세인 1912년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고, 투르게네프·베를렌·구르몽 등의 시를 번역·소개하여 한국 시단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최초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는 베를렌·보들레르 등의 시를 번역한 것으로 이 땅에 상징주의와 퇴폐주의 경향을 탄생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개인시집으로는, 1923년 간행된 해파리의 노래가 있는데, 이는 근대 최초의 개인시집으로 자연과 인생을 민요조 형식으로 담담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19506·25 때 납북되었으며, 1958년 행방불명될 때까지 재북 평화통일위원회의 중앙위원으로 있었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불의 노래(1925)》 《안서시집(1929)》 《안서민요시집(1948)외에 번역시집 신월(新月)》 《원정(園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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