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네이버블로그 '림이'(lj5149)>
자화상(自畵像)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의 시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참 마음이 여린 영혼의 소유자란 생각이다. 이렇게 여리디 여린 심성의 소유자를 우리는 조금은 억센 의미가 담긴 ‘저항시인’이라고 학교에서 가르쳤다. 실제 그의 시에는 어느 곳 한 군데 저항의 자세라든가, 아니면 조국광복을 생각하는 구절이 없다. 오로지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자아성찰이 돋보일 뿐이다. 그 자아성찰조차도 맑고 깨끗한 영혼으로 다가온다.
이 시는 화자가 우물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모든 문장을 ‘-ㅂ니다’로 끝내는 평이한 구어체를 사용하여 산문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우물은 화자 자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데, 이 우물에는 화자의 모습만이 아니라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있’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도 담겨 있다. 우물에 비친 ‘사나이’는 우물에 비친 화자 자신이라고 볼 수 있는데, 화자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우물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화자의 이러한 부끄러움은 암담했던 시대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로 볼 수 있다.
화자는 우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미워져 돌아가고, 돌아가다 보니 가여움이 생겨 다시 들여다보고, 또 미워져 돌아가고, 다시 그리워지는 심리적 갈등을 보인다. 이는 우물에 비친 자신의 현재 모습이 만족스럽지 못한 데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연에서는 2연의 장면을 되풀이하면서 시적 안정감과 균형감을 얻고 있으며, 평화로운 자연의 모습과 함께 순수했던 자신의 과거 모습을 추억하면서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내적 갈등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사나이’는 우물에 비친 화자 자신으로, 때로는 밉지만 때로는 가엾거나 그리워지는 대상이 된다. 여기에서 화자를 ‘사나이’를 바라보는 주체로서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반성적 자아라고 한다면, ‘사나이’는 성찰의 대상으로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현실적 자아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에서 ‘우물’은 자신을 비춰 볼 수 있는 대상으로서 거울과 같은 기능을 한다. 화자는 우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성찰하며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 즉, 우물은 화자에게 현실 속의 부끄러운 자기 모습을 확인시켜 줌으로써 자아 성찰에 이르도록 하는 매개체로, 화자는 우물을 통해 내적 갈등을 해소하고 있다.
시대적 배경을 고려할 때, 일제 강점기라는 부정적 현실 상황에서 화자는 현실과 타협, 안주하려는 자신의 태도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이를 혐오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다 그런 나약한 자신의 모습에 연민의 정서를 느끼고, 다시 미워했다가 순수했던 과거 자신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태도로 나아가고 있다. 이와 같이 자신에 대한 애증을 반복하던 화자는 마지막에서 과거의 순수했던 자신의 모습에 대한 추억을 통해 내적 갈등을 해소하고자 한다.
화자가 우물을 통해 달과 구름, 하늘을 반복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자연의 조화로운 질서를 지상에 옮겨 놓고 싶은 욕망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자신이 소극적인 자세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자기혐오에 빠진다. 그래서 ‘미워져 돌아가고’,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을 ‘가엾게’ 여기며 되돌아오는, 연민과 미움의 이중적인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성찰의 과정에는 자기에 대한 미움과 연민이 필연적으로 동반되기 마련이다. 이는 부끄러움과 거의 같은 자리에 있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윤동주의 시 세계 전반을 지배하는 반성과 성찰의 목소리는 가장 기초적이며 근원적인 사색의 형식이다. 이는 윤리적인 존재가 되려는 의지를 표방하는 인간에게 존재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더구나 윤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최고선(最高善)의 실현에 있다고 할 때 윤동주의 반성과 성찰은 나약한 자기 위로나 달램이 아닌 철저한 자기 수양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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