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다음블로그 '부산 서면에 가면'> - 다대포의 아침
아침 이미지
- 박남수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온갖 물상(物象)을 돌려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地上)의 잔치에
금(金)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開闢)한다.
- <사상계>(1968)
▲이해와 감상
<사상계>(1968)에 처음 발표하고, 그 후 <새의 암장>(1970)에 수록한 이 시는 모든 사물이 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는 밝고 신선한 아침의 이미지를 노래한 것이다. “밤에는 모든 물상이 어둠에 묻혀 버려 그 형상을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던 것이 아침이 되면 밝음 속에 그 본래의 모습을 낱낱이 드러낸다. 그리하여 어둠의 세계인 밤과는 전혀 다른 생동하는 밝음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러한 아침의 건강한 모습을 그려 본 즉물적(卽物的)인 시다. “작자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주지적 성향을 보이는 이 시는 어둠이 새, 돌, 꽃을 낳고, 물상들이 무거운 어깨를 털고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고 의인화하여 표현한다. 새벽의 변화하는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침의 건강성과 생동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러한 역동적 심상은 이 시의 특징적 매력이다. 그러한 동적 심상은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이라는 공감각적 표현에 이르러 하나의 절정을 이룬다. 작가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사물 자체의 이미지에 육박해 간다.
이 시에서 어둠은 긍정적, 생산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어둠을 시련이나 고통 등의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하는데 이 시에서 시인은 어둠을, 생명을 잠재적으로 잉태하고 있는 건강한 이미지로 보고 있다. 온갖 물상을 품고 있는 생명력을 지닌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아침이 되면 물상들은 환희에 차서 움직이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어둠과 아침이 지적 태도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이 대상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사용된 시어의 의미가 달라지고, 나아가 시의 주제도 달라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일상적으로 어둠과 아침은 상반된 개념으로 이해되는 것인데 이 시에서 어둠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무정체인 물상들을 모두 사라지게 하는 부정적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으로 전이(轉移)되어 아침, 곧 밝음을 탄생시키는 생명체의 소생, 혹은 희망에 찬 미래의 이미지로 풀이된다. 그래서 시인은 우리에게 즐겁고 생동감 넘치는 아침의 이미지를 선사한다.
▲작가 박남수(朴南秀, 1918-1994)
시인. 평양 출생. 일본 도쿄중앙대학 졸업. 초기에는 자연적 서경과 서정 속에서 절박한 감정을 은유적으로 환기하는 시를 썼으며, 후기에는 존재성을 규명하려는 주지적 경향을 보였다.
유학 시절 제1회 《문장》지의 추천을 받은 김종한, 이용악 등과 사귀게 되면서, 그들의 권유로 《문장》지에 투고하였는데, 1939년부터 1940년까지 정지용에게 추천되었다. 1940년에 첫 시집인 <초롱불>을 낸 이후 <갈매기 소묘>, <새의 암장(暗葬)> 등 정갈하면서도 의식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시를 써 왔다. 미국에서 지낸 이국 생활의 외로움을 그린 《그리고 그 이후》라는 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1957년에는 유치환, 박목월, 조지훈, 장만영 등과 함께 '한국시인협회'를 창립했으며, 아시아 자유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1994년 6월에는 조국 통일에의 절실한 심경을 노래한 시 “꿈의 물감”으로 서울신문사가 제정한 공초(空超)문학상(제2회) 을 수상했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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