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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종소리 / 박남수

by 혜강(惠江) 2020. 2. 13.


<사진 : 안동시, 2019 제야의 종 타종행사 장면)



종소리


                            - 박남수

 


나는 떠난다. 청동(靑銅)의 표면에서
일제히 날아가는 진폭(振幅)의 새가 되어
광막한 하나의 울음이 되어
하나의 소리가 되어.

 

인종(忍從)은 끝이 났는가.
청동의 벽에
'역사'를 가두어 놓은
칠흑의 감방에서.

 

나는 바람을 타고
들에서는 푸름이 된다.
꽃에서는 웃음이 되고
천상에서는 악기가 된다.

 

먹구름이 깔리면
하늘의 꼭지에서 터지는
뇌성(雷聲)이 되어
가루 가루 가루의 음향이 된다.

 

 

이해와 감상


 박남수의 종소리 는 박남수의 후기 대표작으로 이미지에 의한 표현을 중시하고, 인간 존재의 가치를 탐구한 주지시다. 종소리를 의인화하여 자유를 향한 비상(飛翔)과 확신을 남성적, 역동적 심상으로 노래하였다. 관념의 표상으로 인식되기 쉬운 을 이미지로 형상화하면서도 현대적 지성과 융합된 세련된 통일체를 이루었다.


 박남수의 종소리 는 종소리를 의인화하여 로 설정하고 자유를 향한 비상(飛翔)과 확신을 노래한 작품이다. 아직 울리기, 전의 종을 무겁고 어두운 감옥 혹은 억압으로 보고, 그 종에서 울려나는 종소리를 자유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1연에서는 종소리를 시적 화자인 로 의인화시켜 표현했다. ‘나는 떠난다라는 표현은 종소리가 종에서 울려 나가는 모습을 의인화시켜 표현한 것이다. 종소리는 에서 , 광막한 하나의 울음으로, ‘하나의 소리로 표현된다. 여기서 는 자유의 표상으로 볼 수 있으며, 하나의 울음소리로 아득하게 멀리 퍼져나간다. 2연에서는 그 멀리 퍼져 나가는 자유를 이제까지 구속해 온 인종(忍從)’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청동의 벽 속 칠흑의 감방은 이제까지 자유를 구속해 온 공간이다. 3연에서는 이러한 구속을 벗어나 마음껏 자유를 펼치는 부분이다. 종소리인 바람을 타고’, ‘푸름이 되고, ‘웃음이 되고, ‘악기가 된다. 4연에서는 이러한 자유를 마음껏 펼치지 못하게 하려는 먹구름과의 대결이 이루어진다. ‘하늘의 꼭지는 천상의 끝으로, 횡포에 저항하는 정도를 강조하기 위하여 쓰는 말인 듯하다. ‘먹구름과의 대결 속에서 하늘의 꼭지에서 터지는 뇌성이 되어그것을 이겨 내고 종소리는 곱고 부드러운 소리로 흩어져 퍼진다.


 박남수의 시는 본디 사상이나 윤리 같은 것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관념은 깊이 감추어지고, 드러나는 것은 참신하고도 낯선 이미지들이다. 이미지가 거느리는 배경이나 언어 표현의 암시성이 그의 시에서는 중요시된다. 이 시도 예외는 아니다. 참신하고 역동적인 심상들이 출렁이고 있다. ‘종소리를 의인화한 것인 바, 오랜 인종(忍從) 끝에 역사의 질곡을 박차고 나가는 시인의 자유를 향한 비상(飛翔)과 신념을 이 시는 노래하고 있다.


 소리가 청동의 벽에 갇혀 있는 동안, 즉 종이 울리지 않는 동안은 칠흑의 감옥과도 같다고 화자는 말한다. 오랜 인종(忍從) 끝에 진폭의 새가 되고, ‘울음이 되고, ‘소리가 되어 청동의 표면을 떠난다. 그 종소리는 바람을 타고 날아가 들의 푸름을 되찾아 주고, 꽃의 웃음을 되찾아 주고, 천상의 악기를 울리게 하여 역사의 질곡에 갇힌 세상을 자유롭고 평화롭게 한다. 소리가 청동의 벽에서 풀려나는 순간 그 자신이 자유로워지는 것은 물론 세상을 평화롭게 한다는 뜻이 이 시에는 담겨져 있다고 하겠다.

 

 

<출처> 김왕식의 언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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