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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개화(開花) / 이호우

by 혜강(惠江) 2020. 2. 13.

 

 

 

개화(開花)

 

- 이호우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빛도 숨을 죽이네.
나도 아려 눈을 감네.

 

- 현대문학(1962.5)

 

 

이해와 감상

 

   이호우는 현대시조의 큰 산맥이다. 시조문학사에서 가람과 노산이 현대시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면 이호우는 초정(艸丁)과 더불어 그 뒤를 이어받아 현대시조의 개화기를 열었다. 그의 작품으로 <달밤>, <살구꽃 핀 마을>, <깃발>, <청추> 등은 연시조들이고, <개화>, <>, <묘비명>,  <진주>, <낙후>, <휴화산> 등은 단시조인데 이들 단시조는 작기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개화>는 총 글자가 53자에 불과한 작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그 신비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보통의 평시조보다는 좀 늘어진 글자 수를 가졌으면서도 시조로서의 형식미(形式美)에 충실하고 시로서의 완결미를 보여준다.

 

  초장에서 꽃이 한 잎 두 잎 하늘이 열리듯이 피더니, 중장에서 마지막에 남은 한 꽃잎이 피어나려고 바르르 떨고 있는 숨막히는 고비에 이르고 종장에 와서 개화의 마지막 순간의 긴장감(緊張感)과 엄숙성(嚴肅性) 때문에 바람과 햇볕까지도 숨을 죽인다. 짧은 표현 속에 생명 탄생의 신비(神秘)와 그 엄숙성또는 완성 직전의 황홀한 설렘을 이토록 간명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화자 역시 그 순간 엄숙함에 눈을 뜨지 못한다.

 

 생명의 외양(外樣)은 언뜻 보기에 하찮아 보이지만 그 신비적(神秘的)인 내면(內面)은 언제나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인명(人命)뿐만 아니라 작디작은 미물(微物)의 생명까지도 함부로 보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의 인간다움을 고양(高揚)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초장의 기법은 도치(倒置)와 점층(漸層)과 은유이다. 첫 걸음의 내디딤을 대뜸 도치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시조에서는 분명 흔치않은 수법이다. 그러나 놀라운 한 순간을 발견하고 그것을 충격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평서형의 서술로는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중장은 탄생(誕生) 내지 완성(完成) 직전의 숨막히는 순간이다. 어떤 비유나 변화를 주지 않은, 그냥 그대로 직설(直說)이지만, 조금도 평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종장의 기법은 열거와 점층과 의인(擬人)이다. 마지막 꽃잎이 열리려는 이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순간에 바람도 햇볕도 조용히 삼가며 숨을 죽이고 있다.

 

  거의 동일한 주제를 다루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사계절 뜸을 들인 데 비하여 이호우 선생의 <개화>는 순간의 포착(捕捉)이다. 이를테면 셔터를 꽃을 향해 긴 시간 열어두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인상 깊은 한 장면을 단 한 번 플래시를 터뜨려 한 치 어긋남이 없이 절정의 순간을 붙잡는 기법이다. 따라서 시의 기법 면에서 볼 때 서정주 선생의 그것이 복합적이고 귀납적이라면 이호우 선생의 이것은 다분히 단일적이며 연역적이다.

 

 

작가 이호우(李鎬雨, 1912~1970)

 

 아호는 본명에서 취음하여 이호우(爾豪愚)라 하였다. 경상북도 청도 출신으로 향리의 의명학당(義明學堂)을 거쳐 밀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4년 경성 제1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28년 신경쇠약증세로 낙향하였다.

 

 1929년 일본 도쿄예술대학에 유학하였으나 병 재발과 위장병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다음해 귀국하였다. 광복 후 대구일보 편집과 경영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1952년 대구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지냈고, 1956년에는 대구매일신문 편집국장 및 논설위원을 지냈다. 1946죽순동인으로 참여했고, 1968영남문학회를 조직했다.

 

 1940년 이병기(李秉岐)의 추천을 받아 시조 달밤문장에 발표되어 문단에 나왔다. 이어 발표한 개화·휴화산·바위등은 감상적 서정세계를 넘어서 객관적 관조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노래하고 영탄하던 종래의 시조와는 달리 평범한 제재를 평이하게 노래했으며, 후기에는 인간의 욕정을 승화시켜 편안함을 추구하는 시조를 썼다. 작품집으로 1955년에 펴낸 이호우시조집외에 누이동생 영도와 함께 1968년에 펴낸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가 있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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