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
- 이병기
고개 고대 넘어 호젓은 하다마는,
풀섶 바위 서리 빨간 딸기 패랭이꽃,
가다가 다가도 보며 휘휘한 줄 모르겠다.
묵은 기와 쪽이 발끝에 부딪히고,
성을 고인 돌은 검은 버섯 돋아나고,
성긋이 벌어진 틈엔 다람쥐나 넘나든다.
그리운 옛날 자취 물어도 알 이 없고,
벌건 메 검은 바위 파란 물 하얀 모래
맑고도 고운 그 모양 눈에 모여 어린다.
- <가람시조집>(1939)
▲이해와 감상
3수로 된 연작 시조. 첫 수와 둘째 수는 종장 끝 귀가 일반적인 3자 율격과는 달리 4자로 되어 있다. 이것은 일반 시조의 율격으로 볼 때 파격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가람의 시조는 종장 끝 구를 3ㆍ4자로 된 경우가 많다.
아차산은 서울 워커힐 뒤에 있는 산이다. 삼국시대 백제의 요충지로서 지금도 성터가 남아 있다. 첫 수는 아차산으로 가는 길목의 정경을 읊은 것이다. 따라서 이 시조의 서론이라 볼 수 있다. 호젓한 산길에 딸기나 패랭이꽃이 있어 심심치가 않다. 이것은 자연을 이해하고 친할 수 있는 사람의 얘기다. 자연의 내면을 들여다 볼 줄 모르는 사람은 이처럼 호젓한 산길에서 휘휘하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둘째 수는 아차산에 당도하고 보니, 옛 기와쪽이 발끝에 부딪고, 성돌에는 검은 버섯이 돋고, 성글게 벌어진 그 돌 틈으로는 다람쥐들이 들락거린다. 세월의 위력, 그 무상함을 절실히 느끼는 것이다.
셋째 수에서는 사라진 옛날 자취를 찾아보려고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니, 이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붉은 산봉우리, 검은 바위, 골짜기의 파란 물, 하얀 모래들이 그저 오늘에 남아 그 맑고 고운 모양을 보여줄 뿐이다. 세월의 무상함과 아울러 백제에의 회고의 정(情)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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