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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아차산 / 이병기

by 혜강(惠江) 2020. 2. 13.

 

 

 

 

아차산

 

                                 - 이병기

 

 

고개 고대 넘어 호젓은 하다마는,

풀섶 바위 서리 빨간 딸기 패랭이꽃,

가다가 다가도 보며 휘휘한 줄 모르겠다.

 

묵은 기와 쪽이 발끝에 부딪히고,

성을 고인 돌은 검은 버섯 돋아나고,

성긋이 벌어진 틈엔 다람쥐나 넘나든다.

 

그리운 옛날 자취 물어도 알 이 없고,

벌건 메 검은 바위 파란 물 하얀 모래

맑고도 고운 그 모양 눈에 모여 어린다.

 

                      

                                   - <가람시조집>(1939)

 

 

이해와 감상

 

  3수로 된 연작 시조.  첫 수와 둘째 수는 종장 끝 귀가 일반적인 3자 율격과는 달리 4자로 되어 있다. 이것은 일반 시조의 율격으로 볼 때 파격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가람의 시조는 종장 끝 구를 34자로 된 경우가 많다.

 

  아차산은 서울 워커힐 뒤에 있는 산이다. 삼국시대 백제의 요충지로서 지금도 성터가 남아 있다. 첫 수는 아차산으로 가는 길목의 정경을 읊은 것이다. 따라서 이 시조의 서론이라 볼 수 있다. 호젓한 산길에 딸기나 패랭이꽃이 있어 심심치가 않다. 이것은 자연을 이해하고 친할 수 있는 사람의 얘기다. 자연의 내면을 들여다 볼 줄 모르는 사람은 이처럼 호젓한 산길에서 휘휘하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둘째 수는 아차산에 당도하고 보니, 옛 기와쪽이 발끝에 부딪고, 성돌에는 검은 버섯이 돋고, 성글게 벌어진 그 돌 틈으로는 다람쥐들이 들락거린다. 세월의 위력, 그 무상함을 절실히 느끼는 것이다.

 

 셋째 수에서는 사라진 옛날 자취를 찾아보려고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니, 이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붉은 산봉우리, 검은 바위, 골짜기의 파란 물, 하얀 모래들이 그저 오늘에 남아 그 맑고 고운 모양을 보여줄 뿐이다. 세월의 무상함과 아울러 백제에의 회고의 정()을 느끼게 한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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