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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근화사 삼첩(槿花詞 三疊) / 정인보

by 혜강(惠江) 2020. 2. 13.

 

 

 

 

 

 

근화사 삼첩(槿花詞 三疊)

 

 

                                                     -정인보

 

 

신시(神市)로 내린 우로(雨路) 꽃 점진들 없을쏘냐?
왕검성(王儉城) 첫 봄빛에 피라 시니 무궁화를
지금도 너 곧 대하면 그제런 듯하여라.

저 메는 높고 높고 저 가람은 예고 예고,
피고 또 피오시니 번으로써 세오리까?
천만년 무궁한 빛을 길이 뵐까 하노라.

담우숙 유한(幽閑)ㅎ고나, 모여 핀 양 의초롭다.
태평연월이 둥두렷이 돋아올 제,
옛 향기 일시에 도니 강산 화려하여라.

 

                                     -담원시조집(1948) 수록

 

 

<시어 풀이>

근화(槿花) : 무궁화, ‘근화사무궁화를 예찬한 글

점지 : 무엇이 생기는 것을 미리 지시해 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담우숙 : ‘담숙의 늘인 말, ‘담숙담숙하다(포근하고 폭신하다)’의 어근.

유한(幽閑)하다 : 인품이 조용하고 그윽하다

 

 

 

이해와 감상

 

이 시조는 원래는 배화여학교 반사(班花詞) 8수 중의 하나로 1927년에 씌어졌다. 31편으로 된 이 연시조는 나라꽃 무궁화를 예찬하는 동시에 조국과 민족의 미래에 대한 송축(頌祝)의 뜻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무궁화는 나라의 꽃이요, 민족과 더불어 오랜 역사를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을 생각하며, 민족의 상징으로서의 이 꽃을 향한 깊은 애정을 노래한 시조다

 

이 시조가 지닌 시간성은 민족의 먼 시작으로부터 미래에까지 걸쳐 있다. 무궁화가 민족의 시작과 함께 피기 시작했고, 먼 미래까지도 민족과 함께 피어날 것이라는 데 있다. 신시(神市)는 우리 민족 발생 신화 속에 나오는 첫 도시다. 말하자면 신정시대(神政時代)의 왕도(王都)였다. 환웅천왕(桓雄天王)이 하느님의 뜻을 받아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와 건설한 왕성(王城)이었다이 신시에 내린 비와 이슬은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하느님의 숨결이었다. 이러한 은혜로운 비와 이슬을 맞고, 꽃인들 피어나지 않을까? 그래서 왕검성(王儉城)의 맨 첫봄에 무궁화를 피게 한 것도 하느님의 뜻이었다.

 

민족과 그 생존을 같이해 온 꽃, 오랜 세월을 강산에 피었고, 이 강산에 피어갈 것이다. 소담하고 그윽하고 화목해 보이는 이 꽃이 이제 평화로운 이 땅에 다시 활짝 피니, 강산이 더욱더 화려해 보이는 듯한 것이다.

 

  ‘태평연월이 덩두렷이 돋아올 제는 달이 돋는 밤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태평연월은 평화로운 세월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한자의 덩두렷이 돋아올 제라는 표현이 자칫 실제의 달로 착각하기 쉬운 함정이 되고 있다.' 태평연월이 환히 열려 오니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옛 향기는 오래 묵은 향기로 해석하기 쉬우나, 그러한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서 일제 암흑시대 이전의 향기즉 민족과 함께 침략자의 발아래 짓밟혀 생기를 잃었던 일제 식민지 시대 이전의 자유롭고 향기 높게 되던 그때의 향기로 해석하는 것이 좋겠다.

<참조> 권웅의 한국의 명시해설(보성출판사. 1990)

 

작자 정인보(鄭寅普189031950년납북)

 

 시조시인. 한학자. 교육자. 언론인. 독립운동가. 189356일 서울 출생. 호는 위당(爲堂수파(守坡담원(薝園) 대한제국 말기 양명학자인 이건방의 문하에서경학과 양명학을 공부했다. 일제가 무력으로 한반도를 강점하여 조선조가 종언을 고하자 1910년 상하이[上海난징[南京] 등지를 왕래하면서 홍명희·신규식·박은식·신채호·김규식 등과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1913년 중국에 유학하여 동양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부인 성씨(成氏)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노모의 비애를 위로하고자 귀국하였다. 귀국 후 국내에서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펴다 여러 차례 일본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22년부터 후배들을 가르쳐 민족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연희전문학교를 비롯해 이화여자전문학교,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중앙불교전문학교 등에서 한학과 역사학을 강의했다. 시대일보,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있으면서 조선총독부의 식민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특히 <동아일보에 연재한 5천년간 조선의 얼에서 조선역사 연구의 근본을 '단군조 이래 5,000년간 맥맥히 흘러온 얼'에서 찾고 조선역사는 곧 한민족의 '얼의 역사'임을 강조했으며, '국학'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고 국학연구의 기초를 '실학'에서 찾았다.

 

 19303<시문학> 창간 동인으로 참여하여 정지용, 김영랑, 박용철, 김현구 등과 활동한 민족 시인이다. 일제 식민정책에 항거하여 산속에 은둔생활을 하다가 광복을 맞고 1947년 초대 국학대학 학장, 1948년 초대 감찰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정인보는 <광복의 노래> <개천절 노래> <3.1절 노래> <제헌절 노래> 등을 작시하여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또한 1946년도는 민족사를 모르는 국민에게 바른 역사를 알리고자 조선사 연구를 펴냈으며, 주자학자들의 공리공론과 존화사상을 없애고자 유학의 개혁을 주장했고, 지행일치(知行一致)양명학연론을 저술했다.

 

 8·15해방 후 우익 진영의 문인단체인 전조선문필가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6·25전쟁 때 납북되어 묘향산 근처에서 죽었다고 한다. 저서로는 담원 시조집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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