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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나룻배와 행인 / 한용운

by 혜강(惠江) 2020. 2. 13.




나룻배와 행인

 

                                                       - 한용운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 님의 침묵(1926)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나룻배로 형상화된 시적자아와 행인으로 형상화된 님이 보여주는 태도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상의 흐름으로 볼 때. 1연은 (나룻배)와 당신(행인)의 관계’, 2연은 인내와 희생의 자세’, 3연은 헌신적 기다림’, 4연에서 다시 나룻배와 행인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나룻배(시적자아)는 감정의 기복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당신을 건너가게 하는 일(나룻배의 임무)을 온갖 역경을 묵묵히 견뎌내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것은 믿음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반면 행인은 그런 나에 대해 너무 무심하고 일방적이고 무정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태도는 시적자아의 희생과 인내의 태도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모습이 되고 있다. 아무튼 이 작품은 불교사상에 바탕을 둔 것으로서 종교적, 관념적 언어로서가 아니라 나룻배라는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시의 주제를 비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흙발로 짓밟혀도 원망하지 않고(인내),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며(희생), 언제 올지도 모를 당신을 기다리며 낡아가는 나룻배의 헌신성(사랑)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님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그로 하여금 절망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23행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에 나타나 있다. 이것은 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다. 이 믿음은 <님의 침묵>에서 다시 만날 것을 믿는 것과 동일하다. 거자필반의 원리를 믿고 있기에 날마다 님을 기다리며 낡아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만해에게 있어서 님은 현실적으로 떠나고 없지만, 그 님과의 이별은 만남이라는 밝은 긍정을 전제로 하고 있는 차원 높은 이별이다. 소월의 님은 이미 죽었거나 돌아오지 않을 곳으로 떠나 버린 님이므로 그의 시가 비탄과 체념적인 어조를 띠고 있는데 비해, 만해의 님은 반드시 돌아올 것을 확신하는 님이므로 그의 시는 항상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분위기이다.

 한편 이 작품을 창작된 시기인 일제치하와 관련시켜 해석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보면 행인은 우리의 조국이다. 나룻배인 나는 빼앗긴 나라가 다시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라고 있고, 이러한 마음을 나룻배와 행인으로 표현한 것 같다. 그런 전제로 볼 때 당신에 대한 헌신적인 기다림은 조국 광복에 대한 신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참조> 다음 블로그 Richard Wagner’<나룻배와 행인-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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