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다음 카페 '여행매니아'>
조춘(早春)
- 정인보
그럴싸 그러한지 솔빛 벌써 더 푸르다
산골에 남은 눈이 다산 듯이 보이고녀
토담집 고치는 소리 볕발 아래 들려라
나는 듯 숨은 소리 못 듣는다 없을쏜가
돋으려 터지려고 곳곳마다 움직이리
나비야 하마 알련만 날기 어이 더딘고
이른 봄 고운 자취 어디 아니 미치리까
내 생각 엉기올 젠 가던 구름 머무나니
든 붓대 무능타 말고 헤쳐본들 어떠리.
- 《신생》 2권1호 (1929) 수록
▲이해와 감상
현대시조에서 가장 흔히 목격되는 3수로 구성된 연시조이다. 《현대시조큰사전》을 펼쳐보면 이 작품의 발표연대가 1929년 4월이고 발표지면은 《신생》으로 되어 있다. 시조부흥운동이 1926년에 시작되었으니 이 작품의 탄생은 현대시조 초창기에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당시의 몇 안 되는 명작 가운데 하나임을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도 평이한 우리말을 잘 살린 점이 돋보인다. 그의 대다수 작품을 보면 생경한 한자어와 뜻을 깨치기가 쉽지 않은 고어들이 곧잘 목격되는데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우선 내용을 살펴 보면 이렇다. 봄이 왔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솔빛이 벌써 더 푸르고, 산골에 남은 잔설도 따뜻한 듯이 보이는데, 이웃에서는 벌써 토담집 고치는 소리가 봄 햇살 아래로 들려오는구나. 세미한 봄의 소리가 귀에는 들리지 않아도 새싹이 돋고 씨앗이 눈뜨려고 곳곳마다 움직이고 있으련만 나비는 왜 아직도 날아올 줄 모르는가. 이른 봄의 작은 기운이 온 세상에 두루 변화를 일으키듯이 내 생각(나의 의지)이 골똘히 여물 때에는 먼 하늘에 가던 구름도 나를 위해 머무르게 마련이거니 우리 모두 손에 든 붓대만 탓하지 말고 겨울의 무기력을 떨치고 일어나 새로운 생각을 펼쳐봄이 어떠하겠는가.
따라서 이 작품은 첫째 수에서 이른 봄의 은밀한 기미(機微)를, 둘째 수에서는 천지간에 부지런한 봄의 역사(役事)를, 그리고 마지막 수에서는 무기력을 떨치고 추스르는 새 마음을 각각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생기 감도는 봄기운에 대한 기쁨의 정은 궁극적으로 새봄을 맞아 심기일전하자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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