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고지(高地)가 바로 저긴데/ 이은상

by 혜강(惠江) 2020. 2. 13.

 

<사진 : 권금성 정상의 태극기>

 

고지(高地)가 바로 저긴데

       - 이은상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 능선을 타고

이 밤도 허우적거리며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

부둥켜 안고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새는 날 핏속에 웃는 모습 다시 한번 보고 싶다.

 

             - 자유문학창간호 (1956. 5)

 

이해와 감상

이 시는 1954년 제야에 노신이 쓴 작품으로, 6.25 민족전쟁 중에 잃었던 수도 서울로 환도(還都)되고, 휴전이 협정된 상황에서 통일에의 의지와 비원을 노래한 전쟁시다. 전쟁의 소용돌이가 지나간 뒤의 혼돈을 읊은 것이다. 이런 유의 전쟁시에는 유치환의 <보병과 더불어> <()의 의미>,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조지훈의 <다부원에서> <이기고 돌아오라>, 구상의 <초토의 시> <폐허에서> 등이 있다.

국토 분단의 민족 수난을 제재로 한 이 시는 1연에서 고지 탈환의 의지를, 2연에서 민족사의 시련을 극복한 미래의 모습을 노래함으로써 조국 통일을 염원하는 민족의 의지, 나아가서는 민족사의 고난 극복의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역사의 능선'은 우리 민족의 시련, ''은 암담한 국토 분단의 현실, '고지'는 조국 통일, '심장'은 민족혼, '새는 날'은 조국 통일의 성취 등을 암시하고 있다. 역동적인 시어 '능선, 고지, 핏속, 심장' 등이 시적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민족분단의 현실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민족사의 비극 상태에서 있지만, '예서 말 수는 없다'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넘어지고 깨어져 역경과 고통이 스미는 아픔이라 하더라도 한 조각 심장이 남을 때까지 부등켜 안고 가야만 하는 길, 그래서 새는 날 핏 속에서 웃는 모습을 보고싶다는 간절한 열망과 의지가 드러나 있다.

이은상은 자신의 글에서 '고지가 바로 저긴데'라는 시조를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수난(受難)하는 민족(民族)이다. 통일과 번영을 위해 싸우는 민족(民族)이다. 지금 이 밤에도 쉬지 않고 싸우는 것이다. 기어이 고지를 점령(占領)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고지는 자유(自由)와 평화(平和)와 승리(勝利)를 전취(戰取)할 수 있는 지점을 이름이다. 우리는 그 고지를 바라보며 달리는 것이다. 바로 그 고지가 우리 눈앞에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들의 행진을 포기할 수 없다. 중단해서는 안 된다. 끝까지 그 고지를 점령해야 한다. 이것이 제 1연의 뜻이다.

 그 당시 우리는 패배(敗北)의 쓴잔을 맛보았었다. 가는 곳마다 처참한 전쟁의 자취 뿐이요, 그 중에서도 서울은 완전히 폐허(廢墟)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남아 있는 것이 있었다. 깨뜨릴 수 없는 심장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심장은 나라 사랑하는 의기와 정열을 이름이다. 그것이 우리들에게 가장 소중한 보배인 것이다. 그것만 있으면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심장을 안고 가자. 반드시 우리에게는 영광의 시대가 오고야 말 것이다. 우리는 내일을 향해서 간다. 이 유혈 속에서 통일과 번영의 내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굳이 그것을 노래하고 싶었다. 이것이 제2연의 뜻이었다."

 

작자 이은상(李殷相, 1903~1982)

 

필명은 남천. 두우성(斗牛星). 호는 노산(鷺山). 마산창신학교 고등과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다니다가 1923년 중퇴했다.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사학과에서 공부했다.

1921'두우성'이라는 필명으로 아성에 시 혈조 血潮를 발표한 이후, 1924조선문단영사행 瑩士行·애사 哀史·새벽이면등을 발표해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주로 자유시를 썼으나 1926년 시조부흥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전통문학과 국학에 관심을 갖고 시조를 많이 썼다.

1930년 이후 이병기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시조시인으로 자리를 굳히면서 민요적인 리듬을 살린 할미꽃(1935), 봄처녀(1935) 등을 발표했다. 1932년에 펴낸 첫 개인시조집인 노산시조집>에는 향수·인생무상·자연예찬을 주제로 한 작품이 주로 실려 있는데, 특히 고향생각·가고파·성불사의 밤등에는 평이하고 감미로운 서정이 담겨 있다. 또한 이 시집에는 중장을 뺀 양장시조 소경되어 지이다등이 실려 있어 시조사적 가치로도 주목되고 있다.

해방 이후에는 개인의 서정보다 사회적 현실에 바탕을 둔 국토예찬이나 조국분단의 아픔, 우국지사의 추모, 평론, 시조에 관한 글을 많이 발표했다. 시조시문집으로 《조국강산》(1954)·노산 시문선》(1960) 등과 사화집으로 《조선사화집》(1931) 등이 있고, 전기로 《탐라기행한라산》  《피어린 육백리》·《이충무공일대기》100여 권을 남겼다.

 

<해설> 남상학 시인

 

 

 

'문학관련 > - 읽고 싶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춘(早春) / 정인보  (0) 2020.02.13
근화사 삼첩(槿花詞 三疊) / 정인보  (0) 2020.02.13
아차산 / 이병기  (0) 2020.02.13
난초(蘭草) / 이병기  (0) 2020.02.13
개화(開花) / 이호우  (0) 2020.02.1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