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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난초(蘭草) / 이병기

by 혜강(惠江) 2020. 2. 13.

 

 

 

 

 

난초(蘭草)   

                  

                                          - 이병기


 

1
한 손에 책()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는 볕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오고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2
새로 난 난초잎을 바람이 휘젓는다.
깊이 잠이나 들어 모르면 모르려니와
눈 뜨고 꺾이는 양을 차마 어찌 보리아

산듯한 아침 볕이 발 틈에 비쳐들고
난초 향기는 물밀 듯 밀어오다
잠신들 이 곁에 두고 차마 어찌 뜨리아.

 

3
오늘은 온종일 두고 비는 줄줄 내린다.
꽃이 지던 난초 다시 한 대 피어나며
고적(孤寂)한 나의 마음을 적이 위로하여라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
외로 돌아앉아 책을 앞에 놓아두고
장장(張張)이 넘길 때마다 향을 또한 일어라

 

4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

                                       

                                            - 문장3(1939.4)

 

 

<시어 풀이>

대공 : 줄기. ‘의 사투리.
미진(微塵) : 작은 티끌이나 먼지. 곧 세속을 뜻하는 말.
우로(雨露) : 비와 이슬.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자연의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청신(淸新)한 감각으로써 현대시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가람의 시조 정신이 잘 드러난다. 화자는 고결한 품성을 갖춘 인격체로 표현된 난초와의 교감을 통해 내면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정결하고 고고한 삶에 대한 화자의 소망을 노래한다.

  섬세한 감각과 절제된 언어로' 난초'의 고결(高潔)하고 청신(淸新)한 외모와 세속을 초월한 내적 품성(외유내강)의 본성을 신비롭게 형상화하고 있다. 의인화 수법을 통해 난초와 독자가 동일화되는 경지까지 유도한다. 이 시조는 고결하게 살고자 하는 지은이의 소망을 드러내며 현대 문명 속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이 지향해야 할 삶의 자세를 일깨워 주는 난초의 고결한 삶에 대해 예찬하고 있다.

  난초를 깊은 애정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작품은, 작가가 추구하는 고결한 삶의 방식을 통해 현대인이 지향해야 할 삶의 자세를 제시해 준다.

 난초를 소재로 한 47수의 연시조에서, 1)에서는 난초가 개화하는 순간을, 2)에서는 난초의 새로 나온 잎과 바람을 대비시켜 표현하고 있으며 '아침볕'이란 시각적 이미지와 '난초 향기'라는 후각적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3)에서는 난초와 화자 마음의 교감이 잘 이루어져 있으며, 4)에서는 난초의 외양과 내면세계가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은 고결하게 살고자 하는 시인의 소망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지향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해설 : 남상학 시인)

 

 

이병기 (李秉岐, 1891~1968)

 


 호 가람(嘉藍). 전북 익산(益山) 출생. 한성사범(漢城師範)학교를 졸업하고 보통학교 교사를 지내면서 고문헌(古文獻) 수집과 시조연구에 몰두했다. 1925조선문단(朝鮮文壇)한강(漢江)을 지나며를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시조 시인으로 출발했다. 한편 한국고전(韓國古典)에 대한 주석 및 연구논문을 발표하여, 국문학자로서의 자리도 굳혔다.

  가람은 현대시조의 주소를 찾아준 시인이다. 그는 1926년에서 1934년 사이, 최초로 시조회(時調會)를 발기하고 <시조와 그란 무엇인가> <율격(律格)과 시조> <시조와 그 연구> <시조의 현재와 장래> <시조는 혁신하자> <시조의 기원과 그 형태> 등 본격적인 시조론을 계속 발표했다. 고시조의 관념성과 추상성을 배격하고 참된 개성과 리얼리티의 획득을 주장했다. 그 이후 민족시의 일대 개화를 가져왔으니 그는 현대시조의 아버지라고 하겠다. 그는 국민국학으로서의 시조를 주창한 육당 최남선과 더불어 일제의 엄혹한 시절에 작품과 이론으로 시조를 현대에 살려낸 정신적 등대였다.

  1930년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제정위원, 1935년 조선어 표준어 사정위원이 되고 1939년에 가람시조집을 발간, 문장지 창간호부터 한중록주해(恨中錄註解)를 발표하는 등 고전연구에 정진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 사건에 연루되어 일경에 피검, 함흥 형무소에 수감되어 l년 가까이 복역하다 1943년 출감한 후 귀향하여 농사와 고문헌연구에 몰두했다. 광복 후 상경, 미군정청 편찬과장,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등을 역임하고 각 대학에서 국문학을 강의했다.

  1948의유당일기(意幽堂日記)》 《근조내간집(近朝內簡集)등을 역주(譯註) 간행했고, 1954년 학술원회원이 되었으며, 이 해 백철(白鐵)과 공저로 국문학전사(國文學全史)를 발간, 국문학사를 체계적으로 정리 분석했다. 시조시인으로서 현대적인 시풍을 확립하였고, 국문학자로서는 수많은 고전을 발굴하고 주해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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