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
- 심 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고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둘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시어 풀이>
*인경(人磬):옛날, 밤에 통행 금지를 알리기 위해 설치해서 치던 큰 종. 인정(人定)
*육조(六曹):옛날 조정의 이(吏)·호(戶)·예(禮)·병(兵)·형(刑)·공(工)의 여섯 관아(官衙)
▲이해와 감상
1949년 간행된 그의 작품집 《그날이 오면》의 표제시 <그날이 오면>은 1930년 3·1절을 맞이하여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던 당시 시인의 감격을 되살리면서, 광복된 조국의 그 날을 열정적으로 노래한 민족 항일기의 대표적인 저항시 중의 하나이다. 원래 이 작품집은 1932년에 간행하려고 하였으나 조선총독부의 검열 때문에 좌절되었다. 이 시는 조국 광복의 그 날을 염원하면서 쓴 것으로, 조국 광복의 ‘그날’이 찾아왔을 때 폭발하듯 터져 나올 격정과 환희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국의 비평가인 C.M.바우러는 그의 ‘시와 정치(Poetry and Politics)’에서 이 시를 세계 저항시의 본보기로 들었다. “일본의 한국 통치는 가혹했으나 민족시는 죽이지 못했다.”고 했고, 심훈의 강렬한 공상은 ‘감상적 착오’에 쾌적한 번영을 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만큼 조국 광복의 ‘그 날’에 대한 염원은 강력했으며, 조국 광복의 ‘그날’이 오기만 하면 목숨을 스스로 초개같이 내버려도 좋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
2연, 각 연 8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제1연에서 ‘가정적 미래’의 시점으로 조국 광복의 그 날을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절규에 가까운 격정적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내 목숨이 다하기 전’에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오기만 한다면, 나는 광복의 기쁜 소식을 알리는 인경을 새처럼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다가 죽어도 좋으며, 머리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난다 하더라도 광복의 기쁨 속에서 죽을 수 있다면 여한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조국 광복이 찾아온 그 날의 감격과 환희를 가정적 현재의 시점으로 노래하고 있는 2연도 1연과 거의 동일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2연의 전반부 ‘그날이 와서 ~ 미어질 듯하거든’에서는 조국 광복의 ‘그날’이 찾아왔을 때의 기쁨을 제시하고 있으며, 후반부 ‘드는 칼로 ~ 눈을 감겠소이다.’에서는 조국 광복의 ‘그날’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기를 희생하겠다는 시적 화자의 간절한 바람이 죽음을 넘어선 선구자적 모습으로 생생하게 표현되었다. 이토록 간절한 민족광복에 대한 강렬한 의지와 비장한 목소리는 전율감마저 느끼게 한다.
소설가 · 시인 · 영화인 · 언론인. 본명은 대섭(大燮). 제일고보 재학 중 3·1 운동에 참가하여 옥고를 치렀다. 그 후 중국으로 건너가 항주의 지강(之江)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23년 귀국하여 안석주, 최승일 등과 극문회를 조직하여 활동했고, 영화에 관계하여 시나리오를 쓰는 한편 감독으로도 활약하였다. 동아일보의 브나로드(Vnarod : 민중 속으로) 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 공모에서 《상록수》로 당선되었다. 소설로 《동방의 애인》, 《영원한 미소》, 《직녀성》 등이 있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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