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꽃밭의 독백(獨白) / 서정주

by 혜강(惠江) 2020. 2. 12.

 

 

 

 

꽃밭의 독백(獨白)

- 시소(娑蘇) 단장

 

 

- 서정주

 

 

노래가 낫기는 그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 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 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 <신라초>(1960)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사소 설화'(娑蘇說話)를 모티프로 인간 세계의 유한성과 인간 본질의 한계를 뛰어넘어 영원한 절대 세계를 갈망하는 구도적(求道的) 정신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시는 전통 설화를 창조적으로 변용하여 현대적으로 수용하여 한국의 전통적인 자연관과 종교의식을 독특한 미적 표현하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시인 자신이 원문에 덧붙여 기록한 바 있듯이,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인 '사소'가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여 산으로 신선수행을 가기 전 그녀의 집 꽃밭에서 한 독백을 가정하고 있다. 사소 설화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설화로, 기록에 의하면 '선도산 성모'는 본디 중국 황실의 딸로 이름은 '사소'였는데, 일찍이 신선술을 배워 신라에 와 머물렀다. '솔개가 머무는 곳을 따라 집을 삼아라.'라는 아버지 황제의 편지를 받고서 사소는 선도산에 살며 그곳의 지선(地仙)이 되었다. 일설에는 사소가 처음 진한(辰韓)에 와서 아들을 낳아 동국의 첫 임금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아마 신라 혁거세왕과 알영(閼英)의 두 성인을 말함일 것이다.

 

  화자는 '구름''바닷가'를 통해 넘어설 수 없는 경계를 경험하고(1~4), '산돼지''산새' 같은 인간 세계의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5~6) 그러던 중 '개벽하는 꽃'이 화자의 눈에 띄게 된다. 하지만 화자는 헤엄칠 줄 모르는 아이가 수면에 자신의 얼굴이나 비춰 보듯, 그렇게 꽃의 '닫힌 문'을 뚫어져라 바라만 본다.(7~11

 

  묵묵히 바라보기만 하던 화자는 결국 문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를 반복적으로 ''을 향해 애타게 소리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벼락과 해일' 같은 형벌과 고통을 만난다 할지라도 감내하겠다는 것으로, 구도의 길이 아무리 어려워도 꼭 찾고야 말겠다는 염원을 드러낸다. 상처를 입더라도 경계를 넘어서겠다는 뜨거운 열망이 이 시의 핵심이라 할 것이다. (해설 : 남상학 시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