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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국화 옆에서 / 서정주

by 혜강(惠江) 2020. 2. 12.

 

<출처 : 다음 카페 '우리가 가는 그곳엔'>

 

 

 

국화 옆에서

 

 

- 서정주 


 
 

한 송이 국화꽂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꽂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꽂이여.

노오란 네 꽂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경향신문>(1947. 11.9)  

 

 

이해와 감상

 

 

 ‘국화 옆에서413행의 자유시로 서정주의 대표작이다. 1947119일자 경향신문에 발표되었다. 그후 이 작품은 서정주시선(徐廷柱詩選)(1956)에 수록되었다. 윤회설에 바탕을 둔 이 시는 국화를 소재로 하여 계절적으로는 봄·여름·가을까지 걸쳐져 있으며, 인고(忍苦)를 통해 결정(結晶)된 중년 여성의 원숙미(圓熟美)를 노래하고 있다.

 

 이 시에서 소쩍새는 번뇌와 비탄을, ‘먹구름은 젊은 날의 고뇌를, ‘무서리는 시련과 인내를 상징한다. 우리는 국화가 피어나는 과정을 통하여 한 생명체의 신비성을 감득할 수가 있다. 찬 서리를 맞으면서 노랗게 피는 국화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표상되고 있다. 봄부터 울어대는 소쩍새의 슬픈 울음도, 먹구름 속에서 울던 천둥소리도, 차가운 가을의 무서리도 모두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시적 발상법은 작자 스스로 생명파로 자처하던 초기 사상과도 관련되고 있다.  

 

 그리고 작가의 감정이 고조되어 정점을 이룬 3연의 4행에서 국화는 거울과 마주한 누님과 극적인 합일을 이룬다. 작자는 여기서 갖은 풍상을 겪고 돌아온 안정된 한 중년 여성을 만나게 된 것이다. “젊은 날의 흥분과 모든 감정 소비를 겪고 이제는 한 개의 잔잔한 우물이나 호수와 같이 형()이 잡혀서 거울 앞에 앉아 있는 한 여인의 영상(影像)”이 마련되기까지 시인은 오랜 방황과 번민을 감수해야만 하였다. 지난날을 자성(自省)하고 거울과 마주한 누님의 잔잔한 모습이 되어 나타난 국화꽃에서 우리는 서정의 극치를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은 두 번째 시집 귀촉도(歸蜀途)(1948)에 이르러 동양적(東洋的) 귀의(歸依)’를 시도하였는데, 여기에 이르러 서정의 절정을 이룩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시적 변모 과정이 초기의 관능과 육체에서 동양적 서정이라는 직선적 변모가 아니라, 그 초기의 감각적 경험의 모순과 갈등에서 화해로 지양되는 변증론적 과정이 아닐까

 

 

* 작성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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