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다음카페 '시의 길을 걷는 사람들'>
화사(花蛇)
- 서정주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 내던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석유 먹은 듯……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 보다. 꽃대님보다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드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스며라, 배암!
-<시인부락> 2호 (1936)
*사향 : 사향노루 · 사향고양이 등의 수컷의 향낭(香囊)에서 채취되는 흑갈색 가루로 향이 매우 강함.
*박하 : 향기가 좋아 약재, 향료, 음료, 사탕용으로 쓰이는 풀.
*방초 : 향기로운 풀.
이 작품은 “시인 부락” 2호에 실린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의 첫 시집 “화사집”(1941)의 제목으로 이름 붙여진 작품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작품은 서정주 초기 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으며, 서정주 시의 출발점이 되는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서정주의 초기 시풍은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아 악마적이며 원색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시풍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 인간의 원죄 의식과 원초적 생명력을 통한 관능적 욕망과 원죄적 세계관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 구성을 보면, 1연은 꽃뱀의 아름답고 징그러운 모습, 2~4연은 화자의 강한 저주와 증오, 5연은 생명의 존재적 모순, 6연은 소유하고 싶은 꽃뱀의 아름다운 빛, 7~8연은 관능과 생명력을 고조하고 있다.
이 작품은 ‘꽃뱀’에 대한 상반된 감정을 활용해 인간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본능적 욕망을 과감하게 표출하고 있는 작품이다. 토속적인 원시적 생명력에 대한 갈구(추구)를 원초적이고 강렬한 색채로 드러내어 표현하고 있다. 감각적 표현이 시상을 지배하고 있으며, 비속어를 사용하여 강렬하고 원색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화사’는 원죄 의식을 느끼게 하고 저주스러우며 징그러운 동물임과 동시에 한편으로 ‘꽃대님’보다 아름다운 빛을 지녔고,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을 지닌 아름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심지어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화사’를 화자의 젊은 날 추억인 ‘우리 순네의 고양이 같은 입술’과 동일시하기까지 한다. 유혹적인 뱀의 고운 입술을 통해 ‘우리 순네의 입술’을 연상하고 있을 만큼 다분히 관능적이다.
<참조> 다음백과 : 해법문학 현대시 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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