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의 마음
- 오상순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오 …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魂) …
바다 없는 곳에서
바다를 연모(戀慕)하는 나머지에
눈을 감고 마음 속에
바다를 그려 보다
가만히 앉아서 때를 잃고 …
옛 성 위에 발돋움하고
들 너머 산 너머 보이는 듯 마는 듯
어릿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다
해 지는 줄도 모르고 …
바다를 마음에 불러일으켜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깊은 바닷소리
나의 피의 조류(潮流)를 통하여 오도다.
망망(茫茫)한 푸른 해원(海原) …
마음 눈에 펴서 열리는 때에
안개 같은 바다와 향기
코에 서리도다.
- <동명>(1923)-
▲작품의 이해와 감상
낭만적, 관념적, 명상적, 불교적인 성격을 지닌 시로 자연과 인간의 합일이라는 오랜 동양적 이상 표현한 시다. 이 시는 두 편으로 된 연작시로서, 1923년 <동명>18호에 실린 작품이다. 이 시를 쓸 무렵, 시인은 금강산 신계사 등 전국 사찰을 전전하며 방랑생활을 시작했으며, 그 때의 심정을 담담하게 노래한 대표작이다. 바다와의 합일을 통해 자유와 생명을 갈구하는 젊은 날의 이상을 노래한 작품으로, 대자연과의 합일이 주관적인 내면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때때로 한정된 현실로부터 벗어나 어떤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게 된다. 그 곳은 실재하는 곳일 수도 있고, 가상의 세계일 수도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이 힘들고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울수록 동경의 마음은 더욱 더 커지게 마련이다. 이 시의 자아 또한 그런 동경의 대상으로서 '바다'를 설정해 놓고 있다. 바다는 막힌 데 없이 망망하게 터져 있으며 풍성한 물결이 출렁거리는 곳이기에 현실의 한정된 울타리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기에는 충분한 곳이다. 바다를 그리워하면서 방랑하는 자아의 영혼은 마침내 바다와의 합일을 이루게 된다. 그래서 마음의 눈을 통해 바다는 다가오고, 그 향기마저 코에 서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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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순(吳相淳, 1894.8.9 -1963.6.3)
1894년 서울 출생. 호 공초(空超). 너무나 많은 담배를 피웠던 관계로 흔히 꽁초로 불린다. 경신학교(儆新學校)를 거쳐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종교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20년 김억(金億)·남궁 벽(南宮璧)·염상섭(廉想涉)·황석우(黃錫禹) 등과 함께 《폐허(廢墟)》 동인이 되고 처음으로 《시대고(時代苦)와 그 희생》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후 《폐허》를 통하여 계속 작품을 발표했는데, 초기 시들은 주로 운명을 수용하려는 순응주의, 동양적 허무의 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1924년 보성고등보통학교 교사, 1930년에는 불교중앙학림(佛敎中央學林:동국대학교 전신)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세월을 방랑과 담배연기, 고독 속에서 보냈다. 주요작품으로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방랑의 마음》 《첫날밤》 《해바라기》 등 50여 편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공초 오상순 시선집>, <방랑의 마음>, <허무혼의 선언>이 있다.
그는 1920년대 초의 퇴폐주의 풍조 속에서 허무적이고 어두운 폐허를 그의 시사상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는 태초, 허무, 폐허, 태고 등의 용어를 많이 사용하여 원초의 상태에 대한 향수를 가졌었다. 공초의 작품 세계에 나타난 허무는 개인을 넘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젊은 지식인들 전체의 아픔으로 와 닿는 것이다. 만년에는 종교적 색채가 가미되면서 허무를 초극하여 생명의 신비를 예찬한 철학적 단상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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