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다음 카페 '데니엘상조회'>
첫날 밤
- 오상순
어어 밤은 깊어
화촉 동방의 촛불은 꺼졌다.
허영의 의상은 그림자마저 사라지고…
그 청춘의 알몸이
깊은 어둠 바닷속에서
어족(魚族)인 양 노니는데
홀연 그윽이 들리는 소리 있어,
아야… 야!
태초 생명의 비밀 터지는 소리
한 생명 무궁한 생명으로 통하는 소리
열반(涅槃)의 문 열리는 소리
오오. 구운의 성모 현빈(玄牝)이여!
머언 하늘의 뭇 성좌는
이 밤을 위하여 새로 빛날진저!
밤은 새벽을 배(孕胎)고
침침히 깊어 간다.
▲작품이해
이 시의 '첫날 밤'은 속세 인간사의 남녀 관계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열반의 문 열리는 소리"라는 구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를 종교의 경지에까지 승화시키고 있다. 시상이 집결된 대목은 "아야……. 야!"로서 태초 생명의 비밀이 터지는 소리임을 강조하고 있다.
▲시인 오상순(吳相淳 1894∼1963)
시인. 호는 선운(禪雲)·공초(空超). 서울 출생. 1918년 일본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동지사 대학)] 종교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20년 김억(金億) 등과 함께 《폐허(廢墟)》 동인으로 참가하여 창간호에 <시대고와 그 희생>이라는 논설적 수필을 발표한 뒤, 계속 시를 발표하였다. 초기 시들은 주로 운명을 수용하려는 순응주의와 동양적 허무 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1923년에는 시 《폐허의 제단》 《허무혼의 선언》 등을 발표하여 일제강점기하의 삶을 허무와 세속에서의 일탈로 영위하려는 몸부림을 보였다.
그의 일생은 《방랑의 마음》에 표현된 것처럼 방랑과 담배 연기, 고독과 허무혼 등이었다고 할 수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힘의 숭배》 《힘의 비애》 《가위쇠》 《의문》 《어느 친구에게》 《나의 고통》 《아시아의 마지막 밤풍경》 《첫날밤》 등 50여 편의 시가 있고, 사후 《공초오상순시선》이 간행되었다. 1956년 예술원상, 1962년 서울시 문화상을 받았다. 1963년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시비가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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