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우의 노래 / 서정주
견우의 노래 - 서정주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언 허이언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눈썹 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 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 시집 《귀촉도》(1948) 수록 ◎시어 풀이 *베틀 : 삼베, 무명, 명주 따위의 피륙을 짜는 틀. *북 : 베틀에서, 날실의 틈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씨실을 푸는 기구. 배 모..
2020. 6. 11.
봄비 / 변영로
봄비 - 변영로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우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아려ㅁ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回想)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안에 자지러지노나!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나리노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 《신생활》(1922) 수록..
2020.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