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 남행시초
- 백석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갓갓기도* 하다
바람 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령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황아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 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는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 객주(客主)* 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난이라는 이는 명정(明井) 골에 산다든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甘露)* 같은 물이 솟는 명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冬柏)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 피는 철이 그 언제요
녯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저서 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閑山島)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 《조선일보》(1936. 3. 6) 수록
◎시어 풀이
*고당 : ‘고장’의 사투리
*갓갓기도 : 갓 같기도
*호루기 : 실오징어의 새끼. 꼴뚜기와 유사한 것. ‘호레기’라고도 불린다.
*황화 : ‘황아(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일용 잡화)’의 잘못
*돌각담 : ‘돌담’의 방언(평북)
*객주(客主) : 다른 지역에서 온 상인들의 거처를 제공하며 물건을 맡아 팔거나 흥정을 붙여 주는 일을 하던 상인. 또는 그런 집.
*감로(甘露) : 1. 천하가 태평할 때에 하늘에서 내린다고 하는 단 이슬. 2.생물에게 이로운 이슬.
*오구작작 : 어린아이들이 한곳에 모여 떠드는 모양.
*타관(他官) : 타향(他鄕). 자기 고향이 아닌 고장.
*오불고불 : 이리저리 고르지 않게 구부러진 모양.
*넘엣거리 : 산너에 있는 거리 혹은 익숙하지 않은 낯선거리
*녯 장수 : 옛 장수. 여기서는 이순신 장군을 뜻함
*녕(營) : 영문(營門). 병영의 문.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백석이 1936년 3월 6일자 조선일보 지면에 발표한 것으로 3월 5일부터 8일까지 하루 한 편씩 연재된 ‘남행시초’ 네 편 가운데 한 편이다. ‘남행시초’ 네 편에 각각 창원-통영-고성-삼천포가 제목에 언급돼 있는 점으로 미뤄볼 때 백석은 신춘 기행시를 쓴다는 명분으로 통영에 들렸던 것이다.
이 작품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통영을 찾아온 화자가 통영의 정취를 소개하면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경험을 통해, ‘난’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자신이 찾아간 통영의 정취와 특징을 여러 소재와 다양한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으며, 대구와 유사한 어구의 반복을 통해 리듬감을 형성하고, 통영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마나지 못한 데서 오는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형상화하고 있다.
모두 8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1연은 통영으로 향하는 화자, 2~5연에서는 통영의 특징과 화자의 애정, 6연은 통영 사람들의 생활 모습, 7연에서는 명정골에 사는 ‘난’과의 실연에 대한 불안감, 8연에서는 화자의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드러낸다.
화자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구(舊) 마산 산창에서 연락선을 타고 뱃길로 반날을 걸려 통영으로 간다. 19세기 말 마산엔 일본인과 러시아인들이 들어와 새 시가지를 형성했는데 그 지역이 신 마산, 이전 지역이 구 마산이다. 시에서 언급된 ‘열나흘’은 음력 12월 14일, 양력으로는 1936년 1월 8일이다.
이 시에서 화자는 갓 같은 모양, 짭짤한 바람과 물, 여러 가지 생선과 젓갈 등의 특산물, 풍광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등 통영의 정취와 특징을 다양한 이미지를 활용하여 소개하고, 통영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드러낸다. 이렇게 통영을 소개하던 화자는 갑자기 ‘난’이라는 여인을 떠올리며, 그녀가 사는 명정골은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샘’이 있고, 그곳 샘터엔 물 긷는 처녀들 중에 내가 좋아하는 ‘난’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이제 혼기가 찬 ‘난’이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에는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드러낸다. 이렇게 명정골과 ‘난’에 대한 생각을 하지만, 결국 사랑하는 ‘난’을 만나지 못한 화자는 ‘녯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아서’ 울적한 마음으로 ‘한산도 바다’ 위를 정처 없이 떠다니는 뱃사공처럼 ‘열 나흘 달을 업고 손방망이만 찧는 내 사람’ ‘난’의 모습을 떠올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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