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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조선의 마음 / 변영로

by 혜강(惠江) 2020. 6. 8.

 

 

조선의 마음

 

- 변영로

 

조선의 마음을 어디 가서 찾을까.

조선의 마음을 어디 가서 찾을까.

굴속을 엿 볼까. 바다 밑을 뒤져 볼까.

빽빽한 버들가지 틈을 헤쳐 볼까.

아득한 하늘가나 바라다볼까.

아, 조선의 마음을 어디 가서 찾아볼까.

조선의 마음은 지향할 수 없는 마음, 설운 마음!

 

▲이해와 감상

 

  이 시는 1924년 평문관(平文館)에서 상재된 수주 변영로의 첫 시집 《조선의 마음》의 표제시로, 나라를 잃은 애처로운 마음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 이 시집에는 <버러지도 싫다 하올>, <생시에 못뵈올 님을>, <벗들이여>, <봄비> 등 모두 29편의 시와 부록으로 산문 8편이 실려 있다. 그러나 이 시집은 사상 내용이 불온하다 하여 발행과 동시에 곧 총독부에 의해 압수되고 말았다. 이것 외에도 그는 우리나라 역사상 충신·열녀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작품의 소재나 주제로 즐겨 사용함으로서 자주 일제의 검열에 걸리기도 했다.

  이 시는 근대시 초창기의 시 기법에서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다. 그의 초기시는 연이나 행의 반복에 따른 표현의 기교와 음수율로 인한 음악적 요소가 강화되었고, 후기에 와서 시조 〈고흔산길〉(1930), 〈곤충 9제〉(1941) 등을 통해 더욱 정제되고 세련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여기에 민족애(民族愛)를 노래하는 작품들이 생산된다. 특히 서정적 가락과 민족애가 함께 어우러진 〈논개〉에서는 상징과 은유, 회화적인 색채대비를 통해 민족에 대한 일편단심을 노래하고 있다. 논개에 대한 찬양은 자신의 민족애를 반영한 것으로 민족혼의 되새김을 통해 좌절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 준다.

  그러나 주제 면에서 〈논개〉와 일치하고 있는 <조선의 마음>에서는 그의 시의 전형적인 일면을 보여 준다. 즉 이 시는 단 일곱 줄의 간단한 작품 속에 민족의 비애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그는 민족의식을 의지화·행동화하려는 것이 지배적인 이상이었던 당시의 많은 지식인 가운데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족의식을 민족의 미래와 본질적인 차원으로까지 끌어 올리는 시적 의지를 갖추고 있다. 이것은 당시의 민족적·시대적인 요청을 정확하게 묘파한 객관성을 지니는 것이었다.

  그는 이 시의 첫머리에서 ‘조선의 마음을 어디 가서 찾을까’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조선의 마음’을 찾으려는 간절한 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해 민족적 울분을 드러낸다. ‘굴속’ ‘바다 밑’, ‘빽빽한 버들가지 틈’, 아니면 ‘아득한 하늘가’ 등 육지와 바다, 하늘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음을 인식한 시인은 ‘조선의 마음’을 ‘지향할 수 없는 마음, 설운 마음’이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여기서 ‘조선의 마음’을 지향할 수 없는 마음이라고 표현한 것은 참다운 조선의 마음 그 진실을 확립하여 식민지 상황하의 민족적 슬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쉽사리 쟁취할 수 없기에 시인에게는 슬픔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서 우리의 강토는 비록 일제에 유린당하고 있다 해도 빼앗길 수 없는 것은 '조선의 마음'이었다. 이 시가 수록된 시집 《조선의 마음》의 서문에서 시인이 밝혔듯이, 그가 지향하고자 했던 시 세계는 참다운 ‘조선의 마음’의 탐구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시는 표현 기법에서도 범상치 않은 일면을 보인다. 마지막 행을 제외한 각 행에 ‘찾을까’ ‘엿볼까’, ‘뒤져 볼까’, ‘헤쳐 볼까’, ‘찾아볼까’라는 종결어미를 배열함으로써 시의 리듬을 형성하고 있으며, 주제 의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그의 시는 언제나 민족의식을 위해서 설정되었으면서도 세련된 시적 기교에 의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1920년대 민족주의 문학파를 대변하는 사람의 하나로서 1920년대 초 유미주의적 경향이나 1920년대 중반 이후의 계급주의적 경향에 대립하여 민족의식의 확립이라는 면에서 크게 이바지하였다.


▲작자 변영로(卞榮魯, 1897~1961)

  호는 수주(樹州). 서울 출생. 1919년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해 해외에 발송하는 일을 맡았다. 그는 1920년대의 감상적이며 병적인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시를 언어예술로 자각하고 기교에 중점을 두었다. 특히, 초기시에 나타나는 연이나 행의 반복에 따른 표현의 기교와 음수율로 인한 음악적 요소는 서정시의 극치를 보여 준다. 《페허》의 동인이면서도 《백조》류의 낭만성이 짙은 작품을 발표하면서, 건강한 서정성과 민족정신을 드러냈다. 서정적 가락과 민족애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작품으로 <논개>와 <조선의 마음> 등이 있다.

  시집 《조선의 마음》(1924)으로 문단에서 주목받는 시인으로 부상했으며, 이 외에도 시집으로 《수주시문선(樹州詩文選)》(1959), 《차라리 달 없는 밤이 드면》(1983) 등을 발표했으며, 수필집으로 《수주수상록》(1954), 《명정반세기》(1969)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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