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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버팀목에 대하여 / 복효근

by 혜강(惠江) 2020. 6. 9.

 

 

 

 

 

버팀목에 대하여

 

 

- 복효근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립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뿌려주기도 하지만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큰바람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틔우고 꽃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 시집 《새에 대한 반성문》(2000) 수록

 

 

◎시어 풀이

 

*각목(角木) : 네모지게 깎은 나무.

*허위허위 : 1. 손발 따위를 이리저리 내두르는 모양. 2. 힘에 겨워 힘들어하는 모양.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쓰러져 가는 나무에 세워진 ‘버팀목’을 소재로 다른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삶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노래하고 있다.

 

 시의 화자인 ‘나’는 ‘버팀목’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쓰러진 나무를 지탱하는 버팀목처럼 자신을 지탱해 준 사람들을 생각하며 자신도 그렇게 살기를 다짐하고 있다.

 

 이 시에서는 자연물인 ‘버팀목’을 통해 세상살이의 이치를 말하고 있는데, ‘버팀목’의 특성을 근거로 인간사도 이와 유사할 것이라고 생각한 유추적(類推的) 사고가 나타난다. 즉, 자연에서 쓰러져 가는 나무와 버팀목이 맺었던 관계가 인간의 삶에서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에서도 나타날 것이라고 보는 유추적 사고를 바탕으로 이 시의 시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 시는 경어체를 사용하여 인생사의 깨달음을 경건하게 진솔하고 있다.

 

 화자는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워준다. 죽은 나무(각목)에 기대어 선 산 나무는 죽은 나무의 도움을 받아 얼마 후 싹이 트고 잔뿌리를 내린다. 버팀목은 산 나무가 꽃을 피우고 꽃잎이 질 때까지 산 나무를 지탱해 주다가 자신의 소명을 끝내고 삭아 없어진다. 화자는 버팀목이 사라진 후에 산 나무가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고 그것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 버팀목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깨달음은 유추를 통해 화자 자신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돌아가신 아버지, 함께했던 이웃들은 지금 곁에 없지만, 현재 자신의 삶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고 깨닫는다. 이러한 깨달음은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 틔우고 꽃 피우며/ 살아갈지도 모릅니다’라는 표현처럼, 화자 역시 언젠가 다른 누군가를 위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는 인식으로 확장된다. 화자는 이 시에서 ‘버팀목’이라는 자연물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여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 아름답고 소중한 가치임을 우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영국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라는 사람이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고안했다. 히틀러는 이 말에 고무돼 수백만 유대인을 학살했고, 리처드 도킨스라는 학자는 사람은 본래 이기적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슈테판 클라인은 저서 《이타주의가 지배한다》라는 책에서 이기적인 사람이 이타적인 사람보다 더 잘 산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말한다. 이런 학문적 견해를 잠시 접어 두고라도 인간은 대부분 자기 이익을 추구하며 산다. 이렇게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복효근 시인은 사소한 사물의 관찰을 통하여 따스한 인간애로 사랑과 희생이야말로 또 다른 사랑과 희생을 낳는 원동력이 됨을 드러내고 있다.

 

 

▲작자 복효근(卜孝根, 1962 ~ )

 

 

 시인. 1991년 《시와 시학》에 <새를 기다리며> 등으로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자연의 소재로 일상의 생각과 성찰을 노래한 작품을 주로 창작하였다. 시집으로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1993), 《버마재비 사랑》(1996), 《새에 대한 반성문》(2000), 《목련꽃 브라자》(2005), 《어느 대나무의 고백》 (2006)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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