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후기
- 복효근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못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 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 시집 《마늘촛불》(2009)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지는 목련에 빗대어, 후일 열정적인 사랑의 끝이 아픔으로 남을지라도 후회 없이 열정적인 사랑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목련이 지는 모습을 통해 사랑의 열정과 아픔을 표현하고 있는데, 직유와 설의, 대조, 점층 등의 다양한 표현법을 사용하고 있다.
목련꽃은 양면성을 지닌 꽃이다. 이른 봄에 피는 목련꽃은 순결함의 상징이다. 흠 없이 곱고 고귀하다. 그리고 풍요한 아름다움이 마치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곱고 아름다운 모습이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목련꽃이 질 때의 칙칙한 모습은 목련이 필 때의 아름다움과는 대조적이다. 그래서 모란이 지닌 아름다움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화자는 지는 목련꽃 속에는 강한 열정이 담겨 있음을 발견한다.
이 시에서, 열렬한 사랑을 하고 싶어하는 화자는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처럼,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고 한다. 이어 화자는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저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에서, 동백은 일순간이지만, 목련꽃은 영원한 사랑을 의미한다는 것을 대조적인 이미지로 드러낸다. 그러면서 화자는 ‘아무래도 그렇게’ 동백꽃처럼 돌아서지 못하겠다며, 청춘을 향하여 떨어진 목련 꽃잎처럼 ‘미친 사랑의 증거’가 남는 한이 있더라도, 일순간의 동백꽃처럼, 구름에 달처럼 ‘아픔 없는 사랑’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사랑이 끝난 후 아픔이 크더라도 열정적으로 사랑해야 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어 화자는 ‘사랑했으므로, 사랑해 버렸으므로/ 그대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고 노래한다. ‘사랑했으므로, 사랑해 버렸으므로’는 점층법으로 사랑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며, ‘피딱지’는 사랑의 상처를 의미하는 것이다. 열정적인 사랑이라면 어떤 희생과 상처가 따르더라도 사랑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 얼마나 멋진 자세인가. 그야말로 사랑을 할 줄 아는 그런 태도가 아닌가. 이 시는 황동규 시인이 젊은 날의 정열적인 사랑과 아픔을 노래한 <조그만 사랑 노래>를 연상케 한다.
우리는 목련의 아름다움만큼이나 그 낙화를 슬퍼한다. 그래서 많은 시인이 낙화의 아픔을 노래했다. 하물며 이형기 시인은 <낙화>라는 시에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노래했다. 이런 자세가 이상적인 이별의 표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 속에 이별을 그렇게 단칼에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런데 화자는 말한다.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은 것이다. 이별은 했는데, 그래서 마음속에 아픔이 있지만 잊고 싶지 않단다. 오래도록 그 기억을 간직하고 싶단다. 사랑을 소중하게 여긴 만큼, 이별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마음, 이것은 꽃을 피우는 것 못지않게 꽃 지는 것 또한 아름다움이라고 여기는 마음과 동일한 것이다. 후회 없는 사랑을 했는데. 누가 그 사랑을 탓하겠는가.
▲작자 복효근(卜孝根, 1962 ~ )
시인. 1991년 《시와 시학》에 <새를 기다리며> 등으로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자연의 소재로 일상의 생각과 성찰을 노래한 작품을 주로 창작하였다. 시집으로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1993), 《버마재비 사랑》(1996), 《새에 대한 반성문》(2000), 《목련꽃 브라자》(2005), 《어느 대나무의 고백》 (2006), 《마늘촛불》(2009) 등이 있다.
*해설 : 남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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