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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견우의 노래 / 서정주

by 혜강(惠江) 2020. 6. 11.

 

<출처 : 다음카페 '6070탁구 정다운 쉼터'>

 

견우의 노래

- 서정주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언 허이언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눈썹 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 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 시집 《귀촉도》(1948) 수록

◎시어 풀이

*베틀 : 삼베, 무명, 명주 따위의 피륙을 짜는 틀.
*북 : 베틀에서, 날실의 틈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씨실을 푸는 기구. 배 모양으로 생김..

 

▲이해와 감

  <견우의 노래>는 서정주 시인의 시집 《귀촉도》에 실린 작품으로 견우와 직녀에 대한 설화를 소재로 하여 성숙한 사랑을 위해서는 이별이 필요하다는 역설을 노래하고 있다. 이별의 고통을 감내하는 기나긴 인고의 역정이 사랑을 더 진중하게 한다는 것이다.

  ‘견우직녀’ 설화는 일 년에 단 하루, 칠월 칠석에만 재회한다. 이 시는 사랑하는 연인 사이의 이별과 일 년에 오직 한 번만 만날 수 있는 가혹한 운명을 시로 재구성함으로써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인간의 숙명을 형상화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시는 견우를 화자로 설정하여 화자인 견우가 청자인 직녀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으로 시상을 전개함으로써 당사자로부터 시적 상황과 정서를 전해 듣게 되어 그 상황과 정서에 더욱 공감할 수 있게 한다. 한편, 영탄과 설득의 어조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네’, ‘~게’, ‘세’ 등 종결 어미를 사용하여 주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시에서 전제하고 있는 바는 견우와 직녀의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 이별이다. 화자인 견우는 1연에서,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라는 역설적 표현을 통해 이별의 아픔을 수용할 때 사랑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그리고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이나 ‘물살 몰아 갔다 오는 바람’ 같은 장애물은 단순히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더욱 성숙한 사랑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로 형상화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라고 표현함으로써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을 단절시키는 장애물이자 만남의 공간이라는 ‘푸른 은핫물’로 인해 그리움은 더욱 간절해질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푸른 은핫물로 인해 ‘돌아갈 수 없는 자리’에서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한다며, ‘불타는 홀몸’처럼 혼자서 견뎌야 하는 간절한 그리움을 드러내고 있다. 

  이어 견우는 직녀에게, 나는 ‘모래밭’과 같은 시련의 공간에서 ‘돋아나는 풀싹’을 세고, 그대는 ‘구름’과 같은 공허한 공간에서 ‘베틀로 북을’ 놀리듯 사랑을 짜고, 또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는 칠월 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 나는 ‘검은 암소’를 먹이고 그대는 ‘비단’을 짜면서 만날 날을 기다림으로써 만남의 순간을 위해 각각 역할에 충실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설화의 견우와 직녀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사랑에 대한 보편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즉, 이별이 있어야 사랑은 더욱 깊어지는 것, 1년에 한번 만나고 헤어져 다시 만나는 날까지 1년을 기다리기에 그들의 사랑은 오랫동안 변치 않고 더욱 절실해지는 것. 온갖 장애물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랑은 더욱 성숙해지는 것,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충실히 하면서 초심을 잃지 않고 재회를 위해 준비하는 것.

  결국, 이 시는 성숙한 사랑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별이 있어야 한다는 역설적 인식 아래, 이러한 운명적 이별을 수용하면서, 성숙한 사랑을 만들기 위해서는 온갖 장애물을 극복함으로써 이별을 통해 얻게 되는 참된 사랑의 의미, 즉 이별을 통한 사랑의 승화를 노래한 것이다.

▲작자 서정주(徐廷柱, 1915 ~ 2000)

시인. 전북 고창 출생. 호는 미당(未當).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초기에는 악마적이고 원색적인 시풍으로 인간의 원죄 의식을 주로 노래하였으나, 후에 불교 사상과 샤머니즘 등 동양적인 사상을 노래한 작품을 썼다. 시집으로 《화사집》(1941), 《귀촉도》(1948), 《신라초》(1960), 《동천》(1968), 《질마재 신화》(1975)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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