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춘향의 노래 / 복효근

by 혜강(惠江) 2020. 6. 10.

 

 

 

춘향의 노래

 

- 복효근

 


지리산은
지리산으로 천년을 지리산이듯
도련님은 그렇게 하늘 높은 지리산입니다

섬진강은
또 천 년을 가도 섬진강이듯
나는 땅 낮은 섬진강입니다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지리산이 제 살 속에 낸 길에
섬진강을 안고 흐르듯
나는 도련님 속에 흐르는 강입니다

섬진강이 깊어진 제 가슴에
지리산을 담아 거울처럼 비춰주듯
도련님은 내 안에 서 있는 산입니다

땅이 땅이면서 하늘인 곳
하늘이 하늘이면서 땅인 자리에
엮어가는 꿈
그것이 사랑이라면

땅 낮은 섬진강 도련님과
하늘 높은 지리산 내가 엮는 꿈
너나들이 우리
사랑은 단 하루도 천년입니다.

- 시선집 《어느 대나무의 고백》 (2006) 수록

 

▲이해와 감상

 

 우리나라의 고대소설 <춘향전>을 모티브로 한 이시는 춘향을 화자로 설정하여 임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독백조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는 임에게 바치는 ‘사랑 노래’로서 지리산과 섬진강이라는 자연물을 소재로 하였다. 춘향이와 이몽룡을 ‘섬진강’과 ‘지리산’으로 비유한 이 시에서 지리산을 옆에 끼고 흐르는 섬진강은 시적 화자인 ‘나’를, 지리산은 ‘도련님’(이몽룡)을 의미한다.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1연과 2연은 서로 대구를 이룬다. 지리산은 천년을 가도 여전히 ‘하늘 높은 산’이지만, 섬진강은 역시 천년을 가도 ‘땅 낮은’ 강이다. 여기서 시 속 화자인 춘향은 자신을 한껏 낮추고 상대인 도련님을 지극히 높인다. <춘향전>이 쓰인 시대 배경이 가부장적인 조선 시대인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 같으나 진정으로 사랑하는 상대이므로 화자는 자신을 낮추고 ‘ ~입니다’라는 존경의 마음으로 상대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3연과 4연에 이르면 지리산과 섬진강은 따로가 아니다. 동일한 구조로 되어 있는 두 연은 지리산이 ‘자신의 살 속에 낸 길에 섬진강을 안고 흐르듯’, ‘섬진강이 깊어진 제 가슴에 지리산을 담아 거울처럼 비춰주듯’ 지리산은 섬진강 속에, 섬진강은 지리산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나는 네 안에, 너는 내 안에’라는 두 존재가 일체를 이루는 경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땅이 땅이면서 하늘’인 것과 ‘하늘이 하늘이면서 땅’인 것은 섬진강 안에 지리산이 있고 지리산 안에 섬진강이 있는 것같이, 두 사람이 경계와 한계가 없는 사랑을 엮는 꿈이며, 마지막 6연에 오면 ‘땅 낮은 섬진강 도련님과/ 하늘 높은 지리산 내가 엮는 꿈/ 너나들이 우리/ 사랑은 단 하루도 천년입니다.’라고 표현하여 1, 2연에 쓰인 표현을 도련님과 ‘나’(춘향)의 상황과 위치를 반복, 변조하여 두 사람(춘향과 도련님)의 구분조차 없앰으로써 둘 사이의 친밀감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문장 ‘사랑은 단 하루도 천년입니다’라는 표현은 역설적인 표현으, 춘향과 도련님의 영원한 사랑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 시는 ‘춘향의 이도령에 대한 사랑’이라는 통속적인 내용을 참신한 자연물인 지리산과 섬진강으로 대치하여, 기품이 있는 산과 심오한 강물 같은 사랑으로 표현하고, 경어체의 종결어미를 사용함으로써 격조 높은 사랑으로 품격을 높여 놓았다.

 

▲작자 복효근(卜孝根, 1962 ~ )

 

 시인. 1991년 《시와 시학》에 <새를 기다리며> 등으로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자연의 소재로 일상의 생각과 성찰을 노래한 작품을 주로 창작하였다. 시집으로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1993), 《버마재비 사랑》(1996), 《새에 대한 반성문》(2000), 《목련꽃 브라자》(2005), 《어느 대나무의 고백》 (2006), 《마늘촛불》(2009)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문학관련 > - 읽고 싶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화상 / 서정주  (0) 2020.06.12
견우의 노래 / 서정주  (0) 2020.06.11
목련후기 / 복효근  (1) 2020.06.10
잔디에게 덜 미안한 날 / 복효근  (0) 2020.06.09
버팀목에 대하여 / 복효근  (0) 2020.06.0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