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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수로부인의 얼굴 / 서정주

by 혜강(惠江) 2020. 6. 13.

 

 

 

 

 

수로부인(水路夫人)의 얼굴

 

 

- 서정주

 


1


암소를 끌고 가던
수염이 흰 할아버지가

그 손의 고삐를
아조 그만 놓아 버리게 할만큼,

소 고삐 놓아두고
높은 낭떠러지를
다람쥐 새끼같이 뽀르르르 기어오르게 할만큼,

기어 올라가서
진달래꽃 꺾어다가

노래 한 수 지어 불러
갖다 바치게 할만큼,



2


정자(亭子)에서 점심(點心) 먹고 있는 것
엿보고
바닷속에서 용왕(龍王)이란 놈이 나와
가로채 업고
천길 물속 깊이 들어가 버리게 할만큼,

3


왼 고을 안 사내가
모두 몽둥이를 휘두르고 나오게 할만큼,
왼 고을 안 사내들의 몽둥이란 몽둥이가
한꺼번에 바닷가 언덕을 아프게 치게 할만큼,
왼 고을 안의 말씀이란 말씀이
모조리 한꺼번에 몰려나오게 할만큼,
「내놓아라
내놓아라
우리 수로(水路)
내놓아라」


여럿의 말씀은 무쇠도 녹인다고
물속 천 리를 뚫고
바다 밑바닥까지 닿아가게 할만큼,

4


업어간 용(龍)도 독차지는 못하고
되업어다 강릉(江陵) 땅에 내놓아야 할만큼,
안장 좋은 거북이 등에
되업어다 내놓아야 할만큼,

그래서
그 몸둥이에서는
왼갖 용궁 향내까지가
골고루 다 풍기어 나왔었느니라.

 

 

           - 시집 《신라초》(1961)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고전 설화인 <수로부인>과 관련된 설화를 모티프로 해서 지어진 작품으로 수로 부인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작품이다.

 

 따라서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로부인과 관련된 설화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화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이라는 사람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기 위해서 서라벌(경주)에서 강릉까지 가던 중이었다. 어느 바닷가를 지나가는데, 순정공의 아내 수로부인이 절벽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철쭉꽃을 보고 그 꽃을 꺾어 달라고 하였으나, 절벽이 굉장히 높고 위험하여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 때 소를 몰고 가던 한 노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꽃을 꺾어다 수로부인에게 바치면서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가 바로 향가 <헌화가(獻花歌)>이다. 이두(吏讀)로 된 노래를 번역하면 대강 이렇다.

 

   붉은 바위 가에 / 잡고 있던 암소를 놓으시고 /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 꺾어다 바치오리다.

 

 또, 이틀이 지난 후, 일행이 임해정(臨海亭)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문득 바다의 용이 부인을 끌고 바닷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순정공은 아무런 계책이 없었다. 이때 또 한 노인이 말하기를 “옛날 사람 말에 여러 사람 말은 쇠 같은 물건도 녹인다 했는데 바다 속의 짐승(龍)이 어찌 뭇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경내(境內)의 백성을 모아야 합니다. 노래를 지어 부르고 막대기로 언덕을 치면 부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해가>라는 노래를 지어 무리가 함께 불렀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 남의 아내 앗은 죄 그 얼마나 큰가 / 네 만약 어기어 바치지 않으면 / 그물로 잡아서 구어서 먹으리.

 

  이 노래를 부르자, 용이 부인을 받들고 바다에서 나와 부인을 바쳤다. 순정공이 바다 속 일을 물으니 부인은 “일곱 가지 보물로 장식한 궁전에 음식은 달고 향기로운데 인간의 음식은 아닙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때 옷에서는 이상한 향기가 풍겨 나왔는데, 세간에서는 맡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용모가 세상에 견줄 이가 없었으므로 깊은 산이나 못을 지날 때면 번번이 신물(神物)들에게 붙들렸다고 한다.

 

 이 시의 1은 수로부인의 설화 가운데 나오는 신라 향가 <헌화가(獻花歌)>와 맥락을 같이하며, 2~4의 내용은 고대가요 <해가(海歌)>의 배경 설화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특히 3에는 <해가>가 직접 이용되었다. 각 연의 내용이 연쇄적으로 연결하여 설화의 기본 서사 구조가 자연스럽게 시의 시상 전개를 취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리고, 각 연마다 끝부분을 ‘~할 만큼’이라는 말로 종결함으로써 암시와 여운을 주며 수로 부인의 미모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으며, 구어체 말투를 사용하여 옛날이야기를 전달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1연에서 노인이 절벽의 꽃을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친다. ‘노래 한 수 지어/ 갖다 바치게 할만큼’에서 ‘노래’는 누구에게나 흠모의 대상이 되었던 수로부인에 대한 예찬을 상징하는 노인의 노래이다. 여기서 흰 수염의 할아버지의 행동을 경망스럽다거나 노인의 주책이라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이들은 노인이 수로부인의 관능적인 미를 탐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이것은 단지 흠모하는 대상에개 대한 존경의 표시이며, 이 시의 화자 역시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움 그대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헌화가’에서는 견우 노인(시적 화자)이 자신의 사랑의 마음을 대신할 수 있는 ‘진달래꽃’을 꺾어 바치는 것으로 약간 변형되고 있음도 주목할 부분이다.

 

 2~4는 수로부인 설화에 나오는, 신라 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해기>를 모티브로 하여, 2는 정자에서 수로부인이 점심을 먹는 도중 용왕에게 납치당한 내용을, 3은 실제로 <해가>를 인용하여 납치당한 수로부인을 구하기 위해 동네 남자들이 막대기로 해안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는 내용을, 4에서는 용왕이 수로부인을 다시 내어주는 내용을 들려주고 있다.

 

 이 시의 구조는 ‘~만큼’과 ‘그래서 수로부인의 몸에서는 향기가 났다’라는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만큼’ 뒤에 생략된 것은 ‘아름다웠다’라는 진술이다. 이 말을 생략한 것은 굳이 진술이 필요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시는 노인이 험한 절벽을 기어 올라가 ‘진달래꽃’을 바친 것처럼, 용왕이 탐나 납치할 만큼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예찬 시다. 아울러 당시 신라인들의 미(美)에 대한 예찬을 보게 된다.

 

 

▲작자 서정주(徐廷柱, 1915~2000)

 

 

 시인. 전북 고창 출생. 호는 미당(未當).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인부락》동인. (초기에는 악마적이고 원색적인 시풍으로 인간의 원죄 의식을 주로 노래하였으나, 후에 불교 사상과 샤머니즘 등 동양적인 사상을 노래한 작품을 썼다. 시집으로 《화사집》(1941), 《귀촉도》(1948), 《신라초》(1960), 《동천》(1968), 《질마재 신화》(1975) 등이 있다.

 

 

 

<해살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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