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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노루 - 함주시초(咸州詩抄) 2 / 백석

by 혜강(惠江) 2020. 6. 7.

 

 

 

 

노루 - 함주시초(咸州詩抄) 2

 

 

- 백석

 

 

 

장진(長津) 땅이 지붕 넘에 넘석하는* 거리다

자구나무* 같은 것도 있다

기장 감주*에 기장 찰떡*이 흔한 데다

이 거리에 산골사람이 노루 새끼를 다리고 왔다

산골 사람은 막베 등거리* 막베 잠방등에*를 입고

노루 새끼를 닮었다

 

노루 새끼 등을 쓸며

터 앞에 당콩 순*을 다 먹었다 하고

서른닷 냥 값을 부른다

노루 새끼는 다문다문* 흰 점이 백이고 배안의 털을 너슬너슬* 벗고

산골사람을 닮었다

 

산골사람의 손을 핥으며

약자*에 쓴다는 흥정 소리를 듣는 듯이

새까만 눈에 하이얀 것이 가랑가랑한다*

 

 

◎시어 풀이

 

 

*넘석하는 : 넘어다 보이는.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도 갈 만큼 가까운.

*자구나무 : ‘자귀나무’의 찰못. 콩과의 낙엽 활엽 소교목.

*기장 감주, 기장 차떡 : 기장으로 만든 식혜와 찰떡.

*막베등거리 : 막베(거칠게 짠 베)로 만든 등만 덮을 만하게 만든 덧저고리

*막베잠당둥에 : 막베로 만든 잠방이 형식의 아래 속옷.

*당콩 순 : 강낭콩 순.

*다문다문 : 사이가 배지 않고 드믄 모양.

*너슬너슬 : (굵고 긴 털이나 풀 따위가) 부드럽고 성긴 모양.

*약자 : 약재료.

*가랑가랑하다 : 1.액체가 많이 담기거나 괴어서 가장자리까지 찰 듯하다. 2. 눈에 눈물이 넘칠 듯이 가득 괴어 있다. 3.건더기는 적고 국물이 많다.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산골 사람이 파는 노루 새끼를 통하여 산골 사람과 노루 사이의 정서적 교감을 발견하고, 팔리는 노루에 대한 연민의 정을 드러낸 작품이다.

 

 배경은 가난한 산골 마을의 거리시장이다. 이 장터에 노루 새끼를 팔러 나온 산골 사람과 자신의 처지를 아는 듯한 노루 새끼가 있다. 이 시의 화자는 노루 새끼의 외양 및 행동을 실감 있게 묘사함으로써 주제 의식을 드러내고 있으며, ‘ ~을 닮았다’라는 문장 구조의 반복을 통해 시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시의 내용을 따라가 본다. 장진(長津) 땅이 지붕 너머로 가깝게 보이는 거리는 ‘자구나무’, 기장으로 담근 감주와 찰떡이 흔한 곳이다. 이 거리에 막베 등거리 막베 잠방등에를 입은 산골 사람이 노루 새끼를 데리고 왔다. 그 옷차림의 모습이 ‘노루 새끼를 닮았다’고 한다. 이것은 초라한 모습으로 노루 새끼를 팔러 나온 산골 사람과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팔리기를 기다리는 노루 새끼는 연약하고 순박한 존재라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어 2연은 산골 사람이 노루 새끼를 닮았다고 한 표현을 바꾸어, 노루 새끼가 산골 사람을 닮았다는 것으로 표현을 바뀌었을 뿐 서로 ‘닮았다’는 것은 마찬가지다. 산골 사람은 ‘노루 새끼 등을 쓸며, 터 앞에 강낭콩 순을 다 먹었다’ 하고 노루 새끼값으로 서른닷 양을 부른다. 드문드문 ’흰 점이 박히고 배 안의 털을 너슬너슬 벗’은 모습이 ‘산골 사람을 닮았다’고 말한다. 여기서 터 앞에 강낭콩 순을 먹었기 때문에 제값을 받지 못하고 헐값에 팔리는 노루의 운명은 산골 사람이 ‘노루 새끼’처럼 누군가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라는 것이다. 화자는 ‘노루 새끼’를 통하여 ‘산골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3연에 와서 상황이 변화되면서 화자는 팔리게 된 노루 새끼를 보고 연민에 젖는다. ‘산골 사람의 손을 핥으며/ 약자에 쓴다는 흥정 소리를 들은 듯이/ 새까만 눈에 하아얀 것이 가랑가랑한다.’ 여기서 노루 새기가 산골 사람의 손을 핥는 행위는 흥정 소리를 듣고 이별을 아쉬어 하는 듯한 노루와 산골 사람 사이의 교감(交感)을 표현한 것이며, ‘새까만 눈에 하이얀 것이 가랑가랑한다’는 것은 색채 이미지를 통해 노루의 눈물을 선명하게 표현한 것이지만, 이것은 곧 노루를 바라보는 화자의, 연민의 눈물이기도 한 것이다.

 

 이 시는 시가 쓰인 시대상을 고려하면 일제강점기 우리 민중의 삶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맡긴 신세인 조선 민중. 노루의 눈에 눈물이 가랑가랑하여 흐를 것 같다를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는 조선 백성의 처지를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이 투영되어 표현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함주시초’는 사물이나 동물이 물질적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삶이 인간적인 삶과 동일한 차원으로 그려지고 있다.

 

 

▲작자 백석(白石, 1912~1995)

 

 

 시인, 평안북도 정주 출생. 1930년 열아홉 나이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로 문단에 들어섰다. 곧 시 쓰기로 방향을 바뀌 평안 방언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언어들을 시어로 끌어들이고 고어와 토착어를 빈번하게 사용함으로써 시어의 영역을 넓히고 모국어를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후반에는 여행 중에 접한 풍물이나 체험을 담은 기행시와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즐겨 썼다. 대표작으로는 <여승>, <여우난곬족>, <남신의주 박시봉 방> 등이 있다.

 

 

 

*해설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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