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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by 혜강(惠江) 2020. 6. 5.

 

일러스트 이상진<조선일보 - 2008. 6. 7)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문장》(1938) 수록

 

 

◎시어 풀이

 

*출출이 : 뱁새

*마가리 : 오막살이

*고조곤히 ; 고요히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백석이 1938년에 발표한 시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순수 세계에 대한 소망을 표현한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나’는 ‘나타샤’를 사랑한다. 백석이 '나타샤'라는 외국 여인을 실제로 사랑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시인은 사랑의 시에 이국적인 분위기를 부여하고자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나타샤’라는 외국 이름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실제로 백석은 많은 여성과 교류하였고, 이 시가 발표되자 다수의 여성이 자기가 시의 주인공인 ‘나타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실존 인물이 아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등장인물인 ‘나타샤’를 모델로 했다는 해석이 있다.

 

 이 시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산골’이라는 현실과 분리된 공간을 설정하여 낭만적이고 몽환적인 분위를 조성하고 있으며, 음성 상징어와 토속어를 사용하여 주제를 강조하고, 순수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흰색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또 유사 어구의 반복과 변용을 통해 운율을 형성하고 있다.

 

 시의 내용을 따라가 보면, 시적 화자인 ‘나’는 가난한 사람이다. 화자는 ‘나타샤’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이루기가 어렵다.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에서 ‘눈’은 흰색의 시각적 이미지로 사랑의 순수성을 강조한 것이지만, 폭폭 눈이 내리는 상황은 순수한 사랑을 불가능하게 하는 장애물(부정적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눈이 폭폭 내리는 상황은 시 전체를 통하여 다섯 번이나 반복된다. 그래서 화자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시며, 나타샤와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서’ 살고 싶어 한다. 순간 화자는 자신의 의견에 나타샤가 동의할 것인가 걱정하지만, 화자는 나타샤가 올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기 때문에 현실을 벗어나 산골로 떠나기로 마음을 먹는다.

 

  어찌 보면 ‘현실 도피’라고 볼 수도 있지만, 화자는 자신의 행위를 더러운 현실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말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는 표현은 화자의 상상 속에 들리는 나타샤의 말이며, 호하자의 내면의 소리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말은 현실 세게에 대한 화자의 부정적 인식으로, 사랑과 순수를 유지하기 의하여 산골로 가는 것에 대한 자기합리화인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두 사람을 태우고 갈 ‘흰 당나귀도 오늘밤은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라며 사랑과 이상의 실현에 대한 확신을 노래하고 있다.

 

 화자는 이 시에서 ‘세상’과 ‘산골’을 대비시키면서 시상을 전개해 나간다. ‘세상’은 현실 세계로서 순수한 사랑과 삶을 억압하는 공간이며, 벗어나고 싶은 부정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산골’은 이상 세계이며, 삶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순수한 공간이며, ‘나타샤’와 함께 살고 싶은 공간이다. 그래서 화자는 ‘산골’로 떠나는 환상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환상은 현실적인 한계와 절망을 넘어야 하는 데서 나오기 때문에 이 시에는 애상과 슬픔 또한 짙게 배어 있다.

 

 이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어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제작되기도 했다. 이 뮤지컬은 백석의 시의 일부를 빌리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작자 백석(白石, 1912~1995)

 

 시인, 평안북도 정주 출생. 1930년 열아홉 나이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로 문단에 들어섰다. 그는 시 쓰기로 방향을 바뀌서 평안 방언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언어들을 시어로 끌어들이고 고어와 토착어를 빈번하게 사용함으로써 시어의 영역을 넓히고 모국어를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후반에는 여행 중에 접한 풍물이나 체험을 담은 기행시와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즐겨 썼다. 대표작으로는 <여승>, <여우난곬족>, <남신의주 박시봉 방> 등이 있다. 시집에 자가본(自家本)으로 발행한 《사슴》(1936)이 있고, 2014년 다산책방에서 시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간행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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