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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고향(故鄕) / 백석

by 혜강(惠江) 2020. 6. 3.

 

 

 

 

고향(故鄕)

 

 

- 백석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神仙)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平安道) 정주(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 씨(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 씰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결*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 시집 《동방평론》(1932) 수록

 

 

◎시어 풀이

*북관(北關) : ‘함경도’의 다른 이름.
*여래 :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를 달리 이르는 말.
*관공(關公) : 중국 삼국 시대 촉한의 무장 ‘관우(關羽)’를 높여 부르는 말.
*막역지간(莫逆之間) : 허물이 없는 아주 친한 사이를 이르는 말.                                                                                   
*손결 : 손의 살결.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낯선 타향에서 병을 앓다가 만난 의원이 아버지처럼 섬기는 이와 친구 사이임을 알게 되어, 그를 통해 고향의 따뜻한 정감을 느끼는 상황을 그려 낸 시로,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에서 환기하는 정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그 고향이 불러일으키는 따스한 정이다. 이러한 정서를 직접적인 감정의 토로 없이, 화자의 내면세계를 보여 주는 독백과 인물 간의 극적인 대화 및 다정다감한 어조를 통해 시적 상황을 압축적으로 서술하는 기법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시적 화자인 ‘나’는 고향을 떠나 타향인 ‘북관’에 살고 있다. 낯선 곳에서 병이든 화자는 어느 날 아침 부처와 같이 근엄하면서도 인자한 의원을 찾아간다. 의원은 말없이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 화자가 고향이 ‘평안도 정주’라고 대답하자, 의원은 ‘아무개 씨 고향’이라고 답한다. 그 말은 들은 화자는 의원에게 ‘아무개 씨를 아느냐’고 다시 묻자 의원은 반갑게 웃으며 친한 친구 사이라며 수염을 쓰다듬는다. 화자는 의원의 말을 듣고 그 ‘아무개 씨’는 자기가 ‘아버지로 섬기는’ 분이라 말하자 의원은 타향에서 친구의 아들을 만난 것에 대해 반가움에 또다시 넌지시 웃으며 화자의 맥을 잡는다. 여기서, 화자가 의원에게서 고향과 아버지를 느끼는 것은 ‘맥’을 잡는 행위를 통해서이다. 의원과 아버지의 관계가 밝혀진 후 단순한 진료행위였던 ‘맥’을 짚는 행위는 아버지와 고향의 정을 느끼게 하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화자는 의원의 따스한 손길에서 육친의 정과 고향의 따스함을 느끼게 된다.

 

  이 시는 대화 형식의 서사적 구조를 통해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 시에는 배경, 인물, 사건이 제시되어 있고 이야기의 내용이 축약되어 있어 한 편의 짧은 이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화자의 정서는 고향을 떠나 북관에 있는 상황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으나 아버지의 친구인 의원을 만나면서 ‘반가움’으로 바뀌었다가, 의원이 맥을 다시 짚는 손길을 통하여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은 일제 강점기인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민족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을 고향을 통해 드러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에서 화자가 떠올리는 ‘고향’이 가족의 사랑과 이웃 간의 유대가 있는 공동체적 삶의 공간이라는 점은 반대로 화자의 현재 상황이 그만큼 공동체로부터 멀어져 있고, 고유의 민족 정서가 상실되어 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작자 백석(白石, 1912~1995)

 

 

  시인, 평안북도 정주 출생. 1930년 열아홉 나이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로 문단에 들어 섰다. 시로 방향을 바뀌, 평안 방언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언어들을 시어로 끌어들이고 고어와 토착어를 빈번하게 사용함으로써 시어의 영역을 넓히고 모국어를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후반에는 여행 중에 접한 풍물이나 체험을 담은 기행시와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즐겨 썼다. 대표작으로는 <여승>, <여우난곬족>, <남신의주 박시봉 방>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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