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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북어 / 배우식

by 혜강(惠江) 2020. 6. 1.

 

 

 

 

북어

 

 

- 배우식


  사람한테 잡혀가도 입을 크게 벌리고만 있으면 산다고 아버지한테 귀 닳도록 들었습니다. 사람한테 잡혀가도 눈만 크게 부라리고만 있으면 사람들이 겁먹고 도망간다고, 눈을 똑바로 뜨고만 있으면 사람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며 도망간다고 아버지한테 귀빠지게 들었습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눈 하나 깜박대지 않고 크게 뜨고 있는 내가 무섭지요. 벌벌 떨리지요?



-시집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2005)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북어’를 화자로 내세워 진실과 거짓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태에 대한 비판 의식을 드러낸 작품이다. ‘북어’를 의인화하여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허위와 허풍을 북어의 눈을 통해서 해학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모두 세 문장으로 이루어졌다. 우리가 흔히 보는 ‘북어’는 초점을 잃은 듯한 눈을 하고 싸리나무에 입이 꿰어 팔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런데 시인은 이 시에서 ‘북어’의 ‘입’과 ‘눈’을 통해서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북어의 ‘입’과 ‘눈’은 이 시에서 핵심 시어로 북어의 속성을 잘 드러내는 소재이다. 시인은 북어의 외양 묘사와 그에 대한 북어의 인식을 통해서 주제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화자인 ‘북어’는 사람한테 잡혀가도 ‘입을 크게 벌리고만 있으면 산다고’, ‘눈을 크게 부라리고만 있으면 산다고’,   ‘눈을 똑바로 뜨고만 있으면’ 사람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며 도망간다고 아버지한테 귀빠지게 들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북어가 입을 벌리고 있는 이유. 북어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이유에 대한 시인의 추측으로, 이것은 자신을 무서워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아버지의 말씀과는 달리 현실은 눈을 뜨고 있으나 죽은 상태이며, 벌린 입은 꿰어져 매달려 있는 상태에서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눈을 부릅뜨고 죽어 있는 북어를 두려워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이어 화자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눈 하나 깜빡대지 않고 크게 뜨고 있는 내가 무섭지요? 벌벌 떨리지요?’라고 한다. ‘내가 무섭지요? 벌벌 떨리지요?’라는 화자(북어)의 말과 ‘잘 보이지는 않지만’이란 구절을 통해, 진실과 거짓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를 비판하고 있다. 시적 감각이 순수하고 위트가 있다.

 이처럼, 배우식의 시는 일상 삶 속의 소재를 가지고 깊은 사색과 통찰을 통하여 사람들이 살아가는 참모습을 상상과 해학으로 읊고 있다.

 

 

▲작자 배우식(1952 ~ )

 

 

 시인, 시조 시인, 충청남도 천안 출생. 2003년 《시문학》,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인삼반가사유상>으로 당선, 등단하였다. 시적 감각과 사유의 확장으로 시단과 시조 시단에서 주목받았다. 시집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2005), 시조집 《인삼반가사유상》, 시조선집 《연꽃우체통》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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