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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세한도 / 박신지

by 혜강(惠江) 2020. 5. 30.

 

 

 

 

세한도(歲寒圖)

 

- 박신지

 

 

 

구름 한 점 없는 겨울 허공에

허리 굽은 노송 몇 그루

솔향기보다 짙은 묵향* 어리다

삭정* 바람 말고는 찾아올 손님 있을까

외딴 오두막 하나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어디까지 마음의 길 닿아 있을까

 

- 시집 《봄은 쟁기질하며 온다》 (2002) 수록

 

 

◎시어 풀이

 

*묵향(墨香) : 먹의 향기

*삭정 : 산 나무에 붙어 있는, 말라 죽은 가지. (=삭정이)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황량함과 고립감이 느껴지는 상황에서 추사의 <세한도>를 떠올리고, 그림에 묘사된 상황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황량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고귀한 정신세계를 지향하는 작품이다. 이 시의 표현상의 특징은 한 마디로 간결한 형식에 있다. 2연의 짧은 글 속에 제재가 된 그림의 절제미와 여백의 미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적 발상의 계기가 되는 1연에서 화자는 자신이 있는 ‘겨울 허공’에서 고립감과 황량함을 느끼며, 자신이 처한 상황이 세상으로부터 고립을 자초하는 추사의 유배지와 유사하다는 생각하고, ‘솔 향기보다 짙은 묵향(墨香)’이 어린다며, 그 안에 담긴 추사의 정신세계를 떠올리고 있다. 2연에는 추사의 정신세계를 지향하는 화자의 간절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삭정 바람 말고는 찾아올 손님 있을까’라고 말하면서 ‘외딴 오두막 하나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어디까지 마음의 길 닿아 있을까’라고 노래한다. 여기서 ‘마음의 길’은 고립과 소외를 겪고 있으면서도 현실의 시련에 굴하지 않는 추사의 정신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화자는 추사의 ‘마음의 길’을 따라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구름 한 점 없는 겨울 허공’에서 ‘허리 굽은 노송 몇 그루’를 발견하고, 현실의 시련에 굴하지 않는 ‘세한도에 담긴 추사의 정신세계’를 연상하고, 이어 ‘마음의 길을 지향함으로써 추사의 정신세계를 담고자 하는 화자의 마음을 드러낸 작품이다.

 

 

▲추사의 <세한도(歲寒圖)> 해설

 

 

 세한도는 조선 말기를 풍미했던 추사 김정희(金正喜 : 1786~1856)의 대표작이다. 갈필(渴筆)과 검묵(儉墨)의 묘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문인화로서, 제주도 유배 중에 그려졌다.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었다.

 

 세한도는 김정희가 원악절도(遠惡絶島)라고 하는 제주도 유형지에서 힘겨운 유배 생활을 하던 1844년(헌종 10)에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북경에서 두 번이나 귀한 책을 구해 보내준 제자인 역관 이상적(李尙迪)의 인품을 칭송하여 1844년 제주도 유배지에서 답례로 그려준 그림이다.

 

 종이에 먹으로 그려진 두루마리 형식의 그림 오른쪽에는 화제(畵題) ‘歲寒圖(「세한도」)’라고 가로로 쓰여 있고, 세로에 작은 글씨로 ‘藕船是賞(우선시상 : 우선 이상적에게 이것을 줌)’이라는 관지(款識)가 있으며, 正喜(정희), 阮堂(완당)이라는 도인(圖印)을 찍어 놓았다. 그림 왼편으로는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제일 늦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드는 것을 안다”는 이치에 빗대어, “권세와 이익으로 합친 자들은 그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사귐이 시들해진다”는 사실을 적고 있다. 그림 끝에 그림을 그리게 된 경위를 담은 작가 자신의 발문과 북경에 가서 장악진(章岳鎭), 조진조(趙振祚) 등 그곳의 명사 16명의 찬시(讚詩)를 곁들어놓았다. 이어 뒷날 이 그림을 본 김정희의 문하생 김석준의 찬문과 오세창, 이시영의 배관기 등이 긴 두루마리에 적혀 있다.

 

 그림 자체는 단색조의 수묵과 마른 붓질의 필획만으로 이루어졌으며, 소재와 구도도 지극히 간략하게 다루어졌다. 이처럼 극도로 생략되고 절제된 화면은 직업 화가들의 인위적인 기술과 허식적인 기교주의와는 반대되는 문인화의 특징으로 작가의 농축된 내면세계의 문기(文氣)와 서화 일치(書畫一致)의 극치를 보여준다.

 

 

▲작자 박신지(본명 박정자)

 

 

 시인. 1993년 《시대문학》으로 등단하였다. ‘가장 짧은 글 속의 가장 긴 이야기’를 드러내듯, 일상의 삶 속에서 매일 접하는 것들을 소재로 그 속에서 이야깃거리를 찾아내어 짦은 형식으로 표현한다. 시집으로 《영화 밖에서 영화처럼》(1995), 《봄은 쟁기질하며 온다》(2002), 《미필적 고의의 봄날은 간다》(2010)가 있다.

 

 

 

*작성 및 정리 : 남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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